미시도 여자다 - 1부
늘 정숙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또 그게 맞는 거라고 여기면서 살았다. 특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요조숙녀여야 한다. 더구나 남편과 다 성장한 아들 그리고 조카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난 아직 여자의 본능이 살아있고 그것을 억누르는데 버겹다. 시대가 변했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변화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도
습자지에 잉크가 번지 듯 퍼졌고 누르고 감추던 것이 최고의 미덕이 아님을 알게된 것이다.
폭발 직전의 스트레스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일단 가족 모두를 보낸 오전 시간. 8시가 채 안된 이 때가 나만의 시간이다. 아들은 벌써부터 대학 진학 때문에 새벽같이 나가고 남편은
언제나 그렇듯 러시아워를 피해 미리 서두르기에 아침이 내겐 일찍부터 허락된다. 난 또다른 나로의 변신을 꾀한다. 거들과 맥스 팬티를 벗어벗지고 롱 치마 역시 한쪽에 구겨 놓는다.
2단 옷장 안쪽의 옷들 사이로 나만의 세계가 있다.
오늘은 하얗고 싶다. 정숙하게 보이는 바보스런 하얀색 조심스레 작은 상자를 연다. 몰래 숨겨 모은 팬티들 시스룩 풍의 맥스 미니를 꺼낸다. 남편에게 보일 수 없는 시스룩 흰색이지만
반투명에 가깝다. 95호가 적당하다고 갤러리아 백화점 속옷 샵의 여직원은 늘 말하지만 난 90이나 85를 달란다. 내 상자에 들어갈 것들이기에 내 만족을 위해서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95는 남들이나 건강상이라는 허울에 맞을 뿐이었다. 손바닥만한 팬티 가만히 손 위에 올려놓는다.
앞뒤로 곂쳐졌음에도 손의 살들이 겉으로 드러난다. 하얀 시스룩 맥스미니 울트라 미니보다는 덜 하지만 충분하다. 옆에있는 역시 흰색의 티팬티가 손길을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어제
새벽에 세정을 했기에 더러울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그냥 흰색의 팬티를 입는다. 두개의 엉덩이를 세로로 반만 가려주는 팬티가 엉덩이에 달라붙어서 압박한다. 델타
모양의 앞부분 역시 손질하지 않았으면 음모가 보였을 정도로 작아서 더욱 옥죄인다.
살짝 떨린다. 브라 역시 같은 색상과 소재의 것으로 고른다. 유두와 젖무덤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방안에 살짝 불어온 삭풍에 파르르 유두가 떨며 제 모습을 드러낸다. 뒷쪽에 길게 줄이
하나로 간 이태리 산 투명 스타킹으로 몸을 감싼다. 발 끝부터 서서히 올리며 몸과 하나가 되게 한다. 엉덩이 부분을 끌어올리며 덮자. 팬티가 압박했던 것을 한층 더 한다. 이제 긴팔의
쫄티를 입는다. 터틀로 골랐다. 가벼운 시스룩 브라이기에 브라보다는 그 안의 모습이 오히려 강조된다.
치마는 무얼 입을까. 청? 노출은 어쩔지 몰라도 착용감의 만족이 덜하다. 역시 면스판이다. 흰색 면스판을 골랐다. 이건 길다. 무릎의 길이 오늘 난 더 짧고 강렬한 걸 원한다. 무릎에서
15센티의 스판 스커트를 입는다. 지퍼도 없다. 다만 타이트하기에 스판이 큰 몫을 담당한다. 악세사리와 화장은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 목걸이 하나와 립스틱 그리고 가벼운 볼 터치로
마무리한다. 전신 거울에 비춘다. 쟈켓을 걸쳐야만 가려질듯한 상체의 노출. 도드라진 엉덩이는 어쩔 수가 없다.
오리 엉덩이 마냥 통 튀어나왔기에 가벼운 면 스커트에선 팬티라인은 감출 수 없다. 감추기도 싫다. 가벼운 향수를 뿌리면서 자동차 키 지갑을 백에 넣는다. 그러나 난 집에서 벗어나서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택시를 탄다. 그리 세월의 짐으로 힘겨워보이지 않는 운전수. 뒷자석의 가운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다리가 아주 살짝 벌어진다. 아니 절대 노골적이지 않고
그 모습이 되려 자연스럽다.
간혹 짧은 스커트를 입고 그 속이 보일까 염려되는지 연신 스커트 자락을 쓸어 내리고 당기는 여자들을 보면 오히려 왜그럴까 차라리 입지 말지하는 생각과 더불어 내가 더 민망해진다.
나는 그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상쾌한 아침 공기와 활기 넘치는 거리를 바라본다. 저마다 출근과 퇴근으로 지친 몸을 혹사하고 쉬기 위해서 움직이는 도로 위의 사람들 그 속에서 난
아웃사이더라.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그 아무 것도 중요치 않다.
가까운 압구정역을 지나 신사역에 내리기로 했지만 역삼역까지 갔다. 택시로 무작정 어딜 간다는 건 사실상 어렵기 그지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 던 차 에 근방이 2호선 역삼역이었다.
5천원을 주면서 택시기사는 노골적으로 고개를 돌려 스커트 속을 슬쩍 본다. 창밖의 폭염을 아무 의미 없는 눈길로 비스듬히 기대어 여기까지 오는내내 그가 룸미러를 아래로 조절해서
날 보는 걸 알았었기에 당연히 내릴 때 그럴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낯선 남자의 이글거리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난 아무런 동요조차 없었다.
남루한 느낌. 그건 내가 정말 벗어나고 픈 생활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난 생활에서 벗어나고 픈 것이다. 그의 눈이 아주 휘둥그레지는 걸 뒤로 하고 난 총총히 지하철 계단으로 몸을
미끄러트린다. 사람으로 가득한 곳. 공기 부터가 다르다. 향기로운 여성의 비누와 바디로션 냄새 그리고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는 향수가 뒤 섞여서 아주 혼탁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한 것은 바로 남자들의 땀냄새. 여름이라 그런지 더 심한 것 같다.
몇 주전 보다 더 심한 걸 보니 말이다. 하긴 그때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도 그 이유를 더하고 있어서 아주 살짝 미간을 찌프리게 한다. 어디로 갈까하는 생각은 만원 지하철에서
푸쉬맨들에게 떠 밀려 사방을 사람들로 가두어지고 난 뒤에 간신히 떠올랐지만 정작 생각나는 게 없었다. 부천에 있는 친구 순영이는 일찌감치 이혼해서 혼자가 된 후 술을 파는 작은
카페를 하고 있었다. 늘 나의 자잔한 고민같은 내 삶을 모두 제 일 인양 들어주고 화가 나서 술을 연거푸 마시고 남편과의 문제를 들을 때 치면 기어이 가게 문을 닫고 둘이 술을 마시던
여고시절의 순임이가 떠올랐다. 이른 시간이어서 없을 수도 있겠지만 핸폰을 꺼논 것을 알면서도 간혹 가게에서 자기도 하는 애니까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전철 안의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앉을 자리가 쉽게 발견되지도 않았다. 한 정거장이 지나 운이 좋게도 내 앞의 청년이 일어났다. 아주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잔잔한
움직임과 덜컹거림은 분명 아침 잠의 부족함을 채우고 싶어서인지 눈이 감긴다. 하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침대에 누운 나의 머리컬은 아직 촉촉해서인지 윤기마저 흐르고 온몸을 휩감는
깨끗함은 정결함마저 더해 순수하다.
그러나 서서히 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난 침대에서 다리를 벌리고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한다라고하는 순간 그 두 다리 사이에 들어오는 또다를 다리. 치한이다. 31살 정도 된
셀러리맨.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품은 나에게 순영은 배부른 사모님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면서 일갈했다. 그러나 얼마나 피곤했기에 자기의 숨통을 조금이라도 튈 수 있는
공간으로 밀려왔겠는가. 그러나 나는 성급히 벌어진 다리를 오무린다. 옆 사람이 봤을까하는 걱정까지 함께 그 두리 사이에 힘을 더 한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서 본 얼굴. 그에게서 그 무엇도 느낄 수 없다. 그에게서는 그저 삶의 찌든 벗겨도 쉽게 벗겨지지않고 오히려 코팅이 벗겨질 수밖에 없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다리를
더 벌려서 그에게 따스함을 전하고 싶다. 우쭐거리며 동료에게 오늘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하면서 자신있어 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괜히 장난기도 생기고 왠지 아까 택시 운전사와는 달리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다리를 살짝 더 벌려 그의 허벅지와 종아리 무플을 내 몸으로 받는다.
아주 둔탁하게 떨어지는 그의 육체. 그러나 연민 이상이 아니어서이지 아무런 감흥이 없다. 난 일어나 그를 앉혔다. 다음이 신도림이다. 부천에 가기 위해 환승해야 하는 신도림. 그러나
난 그 게이트의 열림을 뻔히 알면서도 일어선 채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벌리고 앉은 다리 사이에 내 허버지를 가져 댄다. 꿈틀거리는 그의 그 곳을 느끼면서 난 평안한 미소로
내릴 수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은 이미 오래 전에 날 여인이 아니 그저 환자로 보기 시작했다.
몇 십명씩 완전히 벗은 두 다리 사이를 벌리고 그 안의 질까지 그에게 맡기는 여인들을 보면서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그에게 20년 이상 살아온 내 몸은 어떨까 생각해도 그럴 듯 싶었다.
신도림에서 갈아타야 했다. 층계를 내려가는 또각이는 하이힐의 소리는 내게 어떤 모를 긴장감을 주어 온 몸에 힘을 주고 마치 미스코리아나 슈퍼 모델같은 자세를 요구한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가슴을 펴며 걷는 모습. 그러나 계단은 언제나 이런 옷차림을 입고 오를 땐 더더욱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감춰야 한다는 생각과 살짝 보여지고 픈 욕망 사이에서 언제나 갈등하고 그 갈등속에서 아주 어정쩡한 모습으로 오르게 된다. 어설픈 손동작으로 치마의 뒷자락을 잡지도 못하고 노출이
심할 듯 싶을 때만 핸드백으로 살짝 그 위치를 가리는게 내 방법이다. 푸시맨이 간신히 집어넣어야 할 정도였다. 신도림역은 항상 만원이다. 거의 마지막일 거라 생각하면서 푸쉬 맨의
손길 속에서 지하철 안에 들어갔지만 내 뒤로도 더 들어왔고 도 그만큼 서로들이 밀팍되는 1호선. 두 손에 백을 쥐고 가슴으로 모았다.
상대방과의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이지만 아무래도 소매치기가 더 거슬리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에게 치어고 끙끙 거리는 신음이 들린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이 일을 매일같이 겪는 사람들이 못내 안스러웠다. 전화가 왔다. 간신히 백에서 꺼내서 보니 남편이었다. 받고 싶지 않았다. 진동으로 해 놓는 버릇 덕에 도로 백에 넣고는 다시 가슴께로
모으는 순간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