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이야기 - 상편
“야!... 이 새끼!... 사실대로 말 해 봐!... 왜?... 며칠 전부터 우리 지구대 마당을 빙빙 돌면서 계속 안을 엿보며 기웃거리고 있어?................................”
낮선 청년 하나를 끌고 와 자기 책상 앞에 앉혀놓고 문 도식 경장이 큰 소리로 다그치고 있다.
“저기 있는 경찰 아가씨를 너무 좋아해서... 몰래 훔쳐보다가 들킨 겁니다...............................”
처음 보는 낮선 청년이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야... 이 새끼 봐라!... 감히 우리 지구대 대장님을 몰래 훔쳐서 보고.......................................”
낮선 청년의 말에 문 도식 경장은 더욱 크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사랑하는 것도 죄가 됩니까?... 당신은 남녀의 사랑도 모릅니까?.......................................”
크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문 경장을 향해 낮선 청년은 강하게 반발을 하며 말했다.
“뭐?... 사랑?... 에라... 이 미친놈의 새끼!...............................”
다시금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문 경장을 향해 나는 침착히 하라는 듯이 말했다.
“문 경장!... 그냥 무슨 말을 하든지 신경 쓰지 말고... 오늘 행적이나 자세히 물어 봐!... 괜한 사람 붙잡고 시비를 하다가는 골치만 아프게 되니까.............................”
“아... 네!............................................”
내 말에 항의를 하는 낮선 청년에게 계속 화를 내려다가 문 경장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것 봐요... 저... 경찰 아가씨는 내 마음을 안다니까요......................................”
낮선 청년은 자꾸만 내게 눈을 떼지 않고 말을 했다.
“아니... 이 새끼는 자꾸만 우리 지구대 대장님을 보고 아가씨래...................................”
문 경장은 나를 보며 아가씨라고 말을 하는 낮선 청년이 무척이나 못 마땅한 것 같은 모양이다.
“그래... 나에게 직접 말해 봐!... 무슨 할 말이 있어?...................................”
내가 낮선 청년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물었다.
“제가... 요즘 자꾸 아가씨 생각만 나고요... 하루도 아가씨를 못 보면... 견딜 수가 없어서... 매일 이곳 지구대를 찾아와 아가씨를 보려고 기웃 거렸지요...........................”
“응?... 내가 보고 싶어서 우리 지구대를 찾아와 계속 기웃거렸어?...................................”
“네................................”
나는 마음속으로 ‘아차’ 싶었다. 이 낮선 청년이 혹시 나를 훔쳐서 보는 나쁜 스토커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 보고 어쩌라고?........................................”
나는 아주 강하게 낮선 청년을 쏘아보며 반문했다.
“어쩌기는요... 아가씨가 당연히 내 사랑을 받아 주어야지요!............................................”
낮선 청년은 내 말에 용기가 났는지 움츠림이 없이 또박또박 말을 했다.
“그래?... 그런데 어쩌나?... 나 아가씨가 아닌데...................................”
“네... 정말요?.....................................”
“그래................................................”
강하게 엄포를 놓는 내 말에 약간 놀라는 기색을 보이더니 그래도 낮선 청년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포기를 하지 않고 말했다.
“괜한 말 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가씨의 뒷조사를 다해 보았는데... 아직 결혼도 안한 아가씨가 틀림이 없던데 왜 그러십니까?...............................”
“뭐?... 아니 이 새끼가 미쳤나?... 감히 우리 지구대 대장님 뒷조사를 했어?... 세상에 이게 도무지 겁이라고는 없는 놈이네 우리가 조사를 해야지 네가 왜 조사를 다해?.....................”
문 도식 경장은 하도 어이가 없는지 낮선 청년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내 뒷조사를 다 했어?... 무엇 때문에 그러는데?............................................”
나는 속으로 조금 놀라며 물었다.
“아... 지금까지 말 했잖아요... 제가... 아가씨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있다고요.......................................”
“그래... 뭐... 네가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니... 이제부터... 우리 진실하게 솔직하게 다 말해 보자!... 나는 남자가 엉뚱한 소리 거짓말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거든... 그러니 너...
나에게 사실대로 다 말해 봐!... 왜... 네가 우리 지구대를 기웃거리며 살폈는지 말이야!..............................................”
나는 이제 이 낮선 청년에 대하여 왜 그런지 흥미가 끌리기 시작했다. 감히 내 신상에 관하여 뒷조사를 했다는 사실부터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저어... 제가 지구대 마당을 돌며 기웃거린 것은 아가씨가 자리에 있는가 하고 살펴 본 것 뿐입니다... 그리고... 아가씨가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좋아서 계속 훔쳐 본 것 뿐 입니다......”
“뭐?... 나를 계속 훔쳐 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낮선 청년을 향해 소리쳤다.
“아가씨가 얼마 전 여기 있는 몇 사람과 [부천돼지갈비] 식당에 왔을 때에 제가 처음 보았습니다......................................”
“아... 그랬어!........................................”
나는 낮선 청년의 말을 들으며 놀란 가슴을 가라 앉혔다.
“그래... 다음은?..........................................”
“갑자기... 손님 몇 사람이 우리 집에 찾아와... 식사대접을 하려고... 소문난 그 식당에 갔었는데... 그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아가씨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예사로 아가씨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이상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응?... 그래?..............................................”
나는 점점 이 낮선 청년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아가씨를 처음 보고서... 저 여자는 내가 찾던 바로 그 여자다!... 하는 강한 느낌이 왔습니다......................................”
“응?... 그래서?.....................................”
“네... 그때부터 제가 아가씨를 꼭 내 아내로 맞이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는 아는 사람을 통해 아가씨의 뒷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
“그랬더니... 내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아가씨는 경찰대학에 입학을 할 때에도... 전체 수석으로 합격을 했으며... 경찰 대학을 졸업 할 때에도 전체 수석으로 졸업을 했고... 특별히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7세 최연소의 어린 나이에 경감으로 진급을 해서 신문과 방송에서 큰 화제 거리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실하게 부모님을 잘 모시고 지금까지 달동네 셋방에서 효녀로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야... 이 새끼!... 대단한 놈이네... 차라리 네가 경찰관 해라!..........................................”
문 도식 경장이 놀라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
“제가... 아가씨의 늘씬한 외모에만 홀딱 반해서 그러는 것이 정말 아닙니다... 아가씨는 하늘이 저에게 내려 준 영원한 내 여자이기 때문에 감히 뒷조사 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
“정말로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낮선 청년은 말을 다 끝내고 나더니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대장님!... 이 새끼를 그냥 본서로 넘길 까요?... 지금까지 한 행동으로 보아 즉결 심판감인데 말입니다.................................”
문 경장이 낮선 청년을 무섭게 쏘아보며 나에게 물었다.
“그래... 알았어!... 이제 그냥 집에 돌아가도 좋아!.................................................”
잠잠히 말이 없이 낮선 청년의 말을 듣고만 있다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명령을 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낮선 청년은 일어나 조용히 지구대 문을 열고 나갔다.
“아니... 저런 놈을 그냥 가라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문 경장이 뭔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것 같고... 사실... 뭐 조사를 해 보아도...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지구대를 기웃거린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괜히... 이곳에 붙잡아 둘
필요가 뭐 있어?...............................................”
“그렇기는 합니다만... 대장님의 뒷조사를 다하고 돌아다닌 놈이라............................................”
“뭐... 그래도 그 사람이 한 말이 다 사실인데... 어쩌겠어?............................................”
문 경장의 말에 나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듯 말했다.
“야아!... 우리 지구대 대장님이 정말 그렇게 훌륭하신 분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민 형기 순경이 감탄을 하며 말했다.
“야야... 그 놈 참 웃기는 놈이네!... 우리도 모르는 사실을 다 알고................................................”
새로 온 박 정현 순경이 여태껏 잠잠히 보고만 있다가 한 마디 했다.
“그러게 말이야... 하... 감히 우리 지구대 대장님 뒷조사를 다하고 세상에 살다가 보니 저렇게 간 큰 놈은 처음 보았네!.........................................”
문 경장도 비로소 무거운 짐을 벗은 것처럼 자유로운지 낮선 청년에 대하여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대장님!... 아무래도 한 번 그 사람 뒷조사를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대장님의 신상에 관하여 뒷조사를 했다고 하니까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미심적은 구석이 있다는 듯 하 영우 경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냥... 내 버려 둬!... 언뜻 보기에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닐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던데........................................”
나는 모두들 그 낮선 청년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말라는 말을 하며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갑자기 오늘 낮에 우리 지구대를 찾아와 기웃거리다가 문 도식
경장에게 들켜 끌려서 들어 왔던 낮선 청년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하 영우 경장에게 말했다.
“하 경장!... 하 경장이 한 번 오늘 낮에 우리 지구대를 기웃거리던 그 청년에 대하여 몰래 뒷조사를 해 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야... 대장님도 약간 의심이 드시는 것 같습니다...........................................”
내 말에 하 영우 경장은 쾌히 내 말대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퇴근을 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회사에서 퇴근하여 쉬고 있던 우리 엄마가 반기며 물었다.
“그래... 오늘은 별일이 없었니?..........................................”
“응... 조용 했어...............................................”
“요즘... 우리 회사 주변에는 좀도둑들이 많이 설치고 다닌다는데... 네가 근무하는 지구대 주변에는 그런 일이 없다니 참 다행이다..................................”
우리 엄마는 경찰관이 된 내가 무척이나 대견한지 말을 하면서도 자기 딸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은근히 배여 있었다. 나는 옆에 있는 내 방으로 가서 자리에 누웠다. 방 두 칸에 다락 하나
부엌 하나 화장실이 달려있는 3000만 원 짜리 전셋집이 우리 집 재산의 전부다. 다닥다닥 붙은 셋방들이 동을 이루어 사는 달동네에 우리 가족은 오래도록 가난과 함께 싸우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뒷동은 방 한 칸에 부엌 하나 다락 하나가 전부인 달세 집이다. 불 끄고 방에 누워 있는데 어둠속에서 오늘 지구대에 끌려 들어와 문 도식 경장에게 조사를
받던 낮선 청년의 얼굴이 환하게 떠올랐다.
나이는 대략 27, 28세 정도 되어 보였고 얼굴도 해맑은 것이 도무지 불량스럽게 굴러먹은 얼굴은 아닌 것 같았다. 입은 옷차림도 세련되게 입은 폼이 뭔가 모르지만 귀공자 타입이었다.
얼굴도 지금 자세히 생각해서 떠 올려보니 그만하면 잘 생긴 얼굴인데 무엇 때문에 나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면서 지구대를 찾아와서 못난이처럼 기웃거린다는 말인가? 더구나 몰래
내 뒷조사를 샅샅이 다 했다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아직 연애라는 것을 한 번도 못해 봤다. 오직 공부에만 매달렸고 어려운 가정형편에 시달리는 엄마 아빠를 위해 장학금을
받으려고 남보다 공부에 더욱 노력을 하였다. 그리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늘 1등만을 고수 하면서 끊임이 없이 계속 달려 온 나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남자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나 시간이 전혀 없었다. 내 나이 스물셋에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그 동안 종로경찰서에서 오래도록 근무를 하다가 올해 경감으로 계급이
승진 되면서 발령을 받은 곳이 바로 성동경찰서 한양지구대 이었다. 모두들 내가 종로경찰서 정보과에 그대로 근무를 할 줄 알고 있었는데 경무관인 이모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종로경찰서장이 재빨리 손을 써서 나를 이곳 성동경찰서 한양지구대로 발령을 내어 보냈다. 종로경찰서 정보과에 내가 앉아 있으면 종로경찰서장이 자기의 심기가 편안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 부임을 하여 한 동안 조용히 지냈는데 오늘 뜻밖에도 낮선 청년의 출현으로 내 마음이 산란해 졌다.
그냥 사생활 침해로 즉결에 넘겨버릴 수도 있었는데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낮선 청년을 순순히 돌려서 보냈다.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던 해맑은 낮선 청년의 얼굴이
더욱 환하게 떠 오른다. 그 사람이 왜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을까? 그 나이에 선뜻 다른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이런저런
궁금증이 어우러지며 그 청년에 대한 신비감이 엄습해 왔다. 며칠 뒤 하 영우 경장이 자기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 온 낮선 청년에 대한 신상 정보를 내 앞에서 보고를 하였다.
“대장님!... 절대로 놀라지 마십시오!.................................”
마치 엄청난 긴급 비밀을 보고 하듯이 먼저 내 마음을 긴장 시켰다.
“그래... 절대로 안 놀랄 테니 차근차근 조사를 해 온 대로 말해 봐!.......................................”
나는 궁금한 속마음을 감춘 채로 말했다.
“제가... 조사를 해 보니... 그 새끼는 아니... 그 사람은 한국 최고의 수재들만 간다는 카이스트(KAIST)를 졸업한 김철민이라는 사람으로 현재 자기 아버지 회사에 사장으로 있습니다...
회사는 신풍 제약이라는 큰 제약회사로 예방 백신과 신약을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그 놈이 아니... 그런 사람이 어찌 우리 지구대를 기웃거리며 팔푼이 짓을 했다는 말인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데..............................”
문 도식 경장이 너무나 놀라 반문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부자 집 도련님이 아니 신풍제약 사장님이 세상에 많은 여자들 중에 왜
나를 보고 반한다는 말인가? 이즈 유명한 배우들이나 탤런트 패션모델 그리고 미스코리아 출신들도 많이 있는데 아니 그들에게 손만 내밀면 얼씨구 하고 좋아하면서 달려들 터인데
무엇 때문에 왜 나에게 바보짓을 하면서 사랑의 구애를 한다는 말인가?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이 사람의 뒷조사를 하면서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야아... 축하 합니다!.............................................”
“대장님은 너무나 복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정말... 축하 합니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야단이 났다.
“뭐가... 축하를 해!.................................................”
내가 샐쭉 토라진 소리로 내어지르자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지며 조용해 졌다. 나는 갑자기 축하를 한다며 박수를 치고 야단을 하는 그들이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그럼... 계속 다음을 보고 하겠습니다..........................................”
“하 경장!... 됐어!... 더 안 들어도 돼!... 나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를 않아!......................................”
하 영우 경장이 자기가 조사를 해 온 내용을 다시 나에게 보고 하려는 것을 나는 재빨리 막았다.
“대장님!... 그래도 이왕 조사를 해 온 것인데... 좀 더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박 정현 순경이 내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말했다.
“뭐... 더 알아보면 뭐 해!...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인데... 그리고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나는 일부러 속마음을 감추며 마음에 없는 척 했다.
“카이스트(KAIST)를 졸업했으면... 한국 최고의 엘리트인데... 그런 자리 쉽지가 않은데요... 그 곳에 들어가기가 서울대학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데... 머리가 보통 머리겠어요
이참에... 대장님!... 그냥... 그 분이랑 결혼을 하셔도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문 도식 경장이 감탄인지 놀림인지 애매한 말을 나에게 했다.
“문 경장!... 문 경장의 처제가 아직 미혼이라며... 그러니 그 사람하고 한 번 잘 해 봐!... 신풍제약 사장님이라고 하잖아?.........................................”
내가 문 경장의 말에 비꼬는 듯, 한 말을 하자 그는 머리를 끌쩍이며 말을 했다.
“그러고는 싶지만... 우리 처제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를 하여 사귀는 남자가 지금 있어서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다음 달에 결혼식을 하려고 날짜를 잡아 놓았습니다............”
“응?... 그랬나?............................................”
나는 지나가는 소를 보고 말을 하듯이 말했다.
“아이고!... 문 경장님!... 처제 결혼식에 또 축의금이 나가게 생겼습니다... 요즘 계속 축의금이 많이 나가서 경제 사정이 어려운데..............................”
민 형기 순경이 축의금 나갈 일이 부담스러운지 한 마디 했다.
“어이... 민 순경!... 내가 자네 결혼식 때에도 축의금을 했고... 자네 딸 첫 돌에도 축의금을 했는데 그 무슨 소리야?.....................................”
민 도식 경장이 앵 하니 한 마디 했다. 바로 그때였다. 우리 지구대 마당으로 외제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굴러 들어오는 것이 유리창 문으로 보였다. 주차를 한 고급 승용차의 차량 문이
열리고 나이가 50대 초반의 늘씬한 중년의 여인이 나오더니 곧 바로 우리 지구대 안으로 쑥 들어섰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 여인을 맞이하는데 놀랍게도 무척이나
미인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박 정현 순경이 공손히 중년 여인에게 인사를 하며 물었다.
“저어... 혹시... 이 지구대에 이 미경이라는 아가씨가 있나요?.....................................”
중년 여인은 아주 교양이 있는 목소리로 박 정현 순경에게 물었다.
“아... 네... 계십니다!... 바로 저기 계시는 우리 지구대 대장님이십니다...............................................”
박 정현 순경이 조심스럽게 나를 가리키며 중년 여인에게 말했다.
“아... 네... 제가 바로 이 미경입니다... 어쩐 일로 저를 찾으시나요?..............................................”
나는 중년 여인을 똑 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순간 중년 여인은 나를 보고 엄청나게 놀라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하 경장!... 저 여자 분에게 의자 좀 내어 드려!..........................................”
“네...........................................”
하 영우 경장이 재빨리 의자를 중년 여인에게 내어 주며 앉기를 권했다.
“여기... 편히 앉으십시오!......................................................”
그러자 중년 여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어쩐 일로 저를 찾아 오셨나요?..........................................”
나는 갑자기 나를 찾아 온 이 여자가 무척이나 궁금하여 다시 물었다.
“혹시... 며칠 전에 여기에 와서 기웃거리다가 붙잡혀 들어 온 젊은 총각을 기억 하나요?...........................................”
“네?.........................................”
순간 나는 이 여자가 며칠 전에 보았던 그 낮선 청년의 어머니라는 생각이 퍼떡 들었다.
“우리 철민이가 지구대 대장님을 [부천돼지갈비] 식당에서 우연히 한 번 보고는 그만 상사병이 들었지 뭐예요... 처음에는 저도 그저 순간적이겠지 하고... 예사롭게만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에요... 이러다가는 우리 철민이가 병들어 죽겠다 싶어서 체면 염치를 불구하고 지구대 대장님을 제가 이렇게 직접 찾아 왔어요.....................................”
“???..................................................”
나는 그만 할 말을 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세상에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다. 갑자기 두 다리가 약간 떨려 옴을 느꼈다.
“경찰이라고 꼭 범인들만 잡으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지구대 대장님께서 그냥... 한 번만 우리 철민이를 만나주면 안 되나요?.......................”
“???.....................................................”
나는 뭔가 이 여인에게 한 마디 말을 꼭 해야만 하겠는데 얼른 할 말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참... 나도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하지만 어쩌겠어요?...................................................”
중년 여인은 나를 향해 애원하는 눈초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 철민이가 좋아하는 아가씨가 지구대에 근무를 하는 아가씨라고만... 하기에 저는 그냥... 이곳에서 민원 안내를 하는 아가씨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
“그런데 오늘 직접 이곳에 찾아와서 만나보니 지구대 대장님이시네요..............................................”
“.............................................”
“그 동안 우리 철민이에게 친구들을 모두 동원하여 주위에서 예쁘다는 다른 아가씨들을 수없이 소개를 시켜 주기도 해보았는데... 아예... 만나보지도 않고 다 싫다지 뭐예요......”
계속 나를 향해 이야기를 하는 여인을 보면서도 왜 그런지 한 마디도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저어... 아드님께서 지금 신풍제약 사장님이시지요?.............................................”
문 도식 경장이 여인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제 아들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세요?.............................................”
중년 여인은 깜짝 놀라며 문 경장을 보고 물었다.
“관할 구역이라 이 동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지요..................................”
차마 뒷조사를 했다고 말은 못하고 문 경장이 말을 삥 돌려서 말했다.
“사실 말이지만... 우리 철민이에게 달라붙는 여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오직... 공부에만 매달려 지금까지 연애라고는 모르는 애 입니다... 그런 우리 애가... 뜻밖에도 지구대 대장님을
우연히 보고는 그만 이상해졌지 뭐예요...............................................”
중년 여인은 이제 울 것 같은 음성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저어... 대장님!... 어차피 한 번 다녀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중년 여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문 경장은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요... 한 번만 우리 집에 가서 우리 애를 만나주면... 그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게요.................................................”
문 경장의 말에 힘을 얻은 중년 여인은 나에게 애원조로 부탁을 했다. 나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마음을 정하고 중년 여인을 보며 말했다.
“꼭... 그런 안타까운 사정이라면... 제가 한 번 댁의 아드님을 만나 보겠습니다...............................................”
내가 워낙 경찰대학에서 강인한 훈련을 받아나서 그런지 겉으로는 전혀 약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고 차분한 음성으로 중년 여인을 보며 말했다.
“정말... 감사해요.............................................”
중년 여인은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이 얼굴이 밝아지며 감사의 말을 했다.
“그럼... 내가 잠시 다녀 올 테니 모두들 기다리지 말고... 나중에 내가 전화를 하거든 민 순경하고 박 순경이 나를 태우러 와 줘!.........................................”
“네..................................................”
내 말에 모두들 쾌히 대답을 했다. 경찰직은 철저하게 위계의 질서가 있다. 아무리 내가 나이 어려도 상관이기에 그들을 향해 엄격하게 명령을 했다. 나는 중년 여인을 데리고 지구대
마당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의 차에 함께 타고 낮선 청년이 상사병으로 누워서 있다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차를 타고 한참을 가니 갑자기 대궐과 같은 엄청나게 큰 집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대문을 열어주자 차는 넓은 정원 한쪽으로 가서 멈추어 섰다.
“다... 왔어요!.....................................................”
중년 여인이 나를 안내하며 앞장을 서서 걸었다.
“어서 오세요... 사모님!..............................................”
현관문이 열리고 가정부로 보이는 아줌마가 나와서 인사를 했다.
“아직도... 우리 철민이는 자기 방에 그대로 누워 있어요?.................................................”
“네..................................................”
중년 여인의 물음에 가정부 아줌마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이리로 와서 잠시 앉아 기다려 주세요!.....................................”
엄청나게 넓은 응접실에 놓여 있는 푹신한 소파를 가리키며 중년 여인이 말했다.
“네............................................”
나는 중년 여인의 말대로 조용히 응접실 소파에 앉았다. 기다리고 있으니 가정부 아줌마가 차와 다과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으며 권했다.
“차를 드시면서 편히 기다리세요!..................................”
가정부 아줌마가 깍듯이 나를 대하며 말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찻잔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집어서 들고 차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