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회원투고] 언제까지나 - 2

[야설 회원투고] 언제까지나 - 2

관리자 0 1645

그 앞에서 알짱거리다간 방안에 있는 사람이 금방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사랑채와 소로 사이에 섰다.

벽에 난 봉창 문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만족할 수밖엔 별도리가 없었다.

그 사이 안채로 갔던 엄마가 그 방으로 다시 와 있었나 보다.현아~ 00이가 혹시 다른 사람한테 말 안할랑 강? 크 큭~ 걱정 말거라.

그래도 갸 가 저 그 히야 닮아가 입은 무겁다 아이가. 그라고 갸 는 그냥 내가 엄마 젖이나 만진 줄 알지 잘 모른다.


괘 안타. 걱정 말거레이. 그래도. 좀 불안타.어린 아가 뭘 알 겠 노? 그라고 지도 내가 배 암 보여 준 다 꼬 캤으니 내가 엄마 젖 만진 정도로 아는 상황에서 남한테는 말 안할 끼다.

그러 이 고마하고 엄마 젖이나 함 더 만져보자~아 잉~ 그 라다 또 다른 사람 오마 우 짤 라 꼬?"

혹시나 해서 삽짝에서 다른 사람 있나 도 살피고, 대문도 꼭꼭 잠 구고 온 거 아이가~

그래도, 오늘은 위험하다카이.. 또 얼 라 붙 으 마 우얄 라 꼬.."그라 마.. 내 좀하다가 빼 꾸마... 으응~ 들은 것은 이 정도 뿐이다.

방안의 두 사람이 소리를 낮추었기 때문인지 간혹 아~ 하는 신음 소리 정도가 들리고 낮아졌다, 높아 졌다 를 반복하는 신음소리를 들었다.그 당시엔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잡지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다.

또 저희 고향이 촌구석이라서 어린 저는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어린 나이지만 은근히 흥분이 되었다.

성적 흥분이 아니라, 다 큰 형이 엄마젖을 만지는 것을 몰래 숨어서 엿보고 듣는다는 그런 흥분이었다.그날 한동안 그 집 앞에서 그 신음소릴 듣고 난후에 산에 가서 그 형이 준 밤을 까먹었다.

난, 입 무거운 아이에 걸맞게 그 기억은 말끔히 내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있었다.

1961년 1월의 어느 새벽. 아직 동장군의 위세가 맹위를 떨치는 경상도의 어느 골짜기 마을이다.

부엌 하나에 방 두개의 조그마한 초가집 아래엔 은은한 초롱불이 가물가물 한 방안을 비추고 있다.아범아~ 물 좀 따뜻하게 해서 내 온 나.. 알라 나올라 카나 보네.알 았 심 더. 어 무이 예.다리를 약간 저는 젊은 농 꾼이 급하게 부엌으로 들어가서 대야에 따뜻한 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온다."아~악~~

길게 비명을 내지르는 어린 산모의 용쓰는 소리였다.

한방에 모든 이들을 애태우던 아기의 머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뒤를 이어 몸통과 태반이 딸려 나왔다.응애~ 응애~ 응애~ 나 응애 예요~ 아주 조숙하고 느끼한 흥국이 같은 아이가 나왔나보다. 고생 많 았 제?

수고했다. 우리 집 삼대독자 낳는 다 꼬 욕봤다.

얼 라 이름은 야 할 배가 돌아가시기 전에 작명가한테 받아놓은 종 현 이다.


이 종 현! 아기의 아버지는 산모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넨다.

이미 자신의 아버지가 아들을 낳으면 붙이라고 용한 작명가에게서 지어놓은 이 종 현이란 이름을 간난 아이에게 들려준다.종 현은 온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가족들의 종 현 사랑은 꼭 삼대독자라서 뿐만 아니라 이 집안을 크게 일으킬 아이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언에 대한 믿음이 컸다.비록 넉넉한 살림이 아닌 탓에 보약 한 채 지어먹이지 못했지만...


제 또래보다 두세 살이나 더 큰 몸통을 하고선 온 동네가 제 것 인 냥 재바르게 싸돌아다니면서 겨울철에도 감기한번 걸리지 않고 자라났다.종 현이 엄마와 아버지의 은밀한 행위를 본 것은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다. 아마 여섯 살 때인가 싶다.한참을 자고 있던 종 현은 엄마의 앓는 듯 신음소리에 눈을 떠 고 옆을 보았었다.

아버지가 엄마의 위로 올라가 한참 허리를 놀리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눈치가 빠른 종 현은 이게 아마 동구 밖에서 보았던 개새끼들의 빠구리와 같은 것이란 걸 알았다. 몇 살 위의 형들이 새끼를 낳으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곤 개들의 빠구리가 아닌 인간의 빠구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척 척척~ 철퍽.. 하~윽엄마는 작은 신음소리를 끊임없이 뱉어내면서도 절대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다.

아마 종 현과 건너 방의 시어머니를 의식한 탓이리라.

허 어 억~

아버지가 한참을 그렇게 엄마의 몸 위에서 허리를 빠르게 놀리다가 어느 순간 이었다.

짐승과도 같은 울부짖음을 끝으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엄마의 몸에서 굴러 떨어졌다.종 현은 아버지와 엄마가 숨을 헐떡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흥분이 이는 것을 느꼈다.

그게 어떠한 흥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고운 엄마를 자신도 아버지처럼 한번 안아보고 싶다고 느꼈다. 엄마는 46년생으로 종 현의 할머니에겐 6촌 언니의 손녀였다.

육이오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지금의 시댁인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때가 58년이었고, 당시엔 보리 고개가 무섭던 시절이라서 어린 소녀가 마땅히 의지할 곳도 없었던 터였다.

할머니의 6촌 여동생인 종 현의 할머니가 거두었던 것이다.

물론 종 현의 할머니는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다 이유가 있어서 종 현의 엄마를 거둔 것이었다. 종 현의 아버지는 육이오 때 징병이 되어서 전쟁에 참가했지만 얼마 못 가 허벅지에 부상을 당해 제대를 했다.

어찌 보면 부상으로 인해 살아남은 것이 되고 어찌 보면 그로인해 평생 다리를 저는 불구가 되었으니 이걸 새옹지마라고 해도 될 진 모르겠다.그런 아버지이기에 비록 국가에서 쥐꼬리 만 한 상이군경에 대한 지원이 있었다곤 하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마땅한 혼처를 구할 수 없었다. 그때 엄마가 할머니의 눈에 띈 것이었다.

비록 어리긴 하지만 일이년만 지나도 충분히 여자구실은 가능하다고 생각을 했기에 선심 쓰는 척 데리고 온 것이었다.할머니의 바람대로 엄마는 종 현을 임신했고 61년에 종 현 이가 태어난 것이었다. 그러니 아들인 종 현이 여섯 살 이라곤 하지만 엄마의 나이는 고작 스물 하나의 앳되고 고운 모습이었다.

각설하고.. 종 현은 눈치 빠른 아이답게 엄마나 아버지가 혹시 자신이 그들의 행위를 지켜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몸을 틀어 등이 보이도록하곤 엄마와 아빠를 유심히 관찰했다.좋았나? 예? 잘 모르 겠 심 더...와, 아가 안 들어서 제? 종 현이 낳고는 소식이 오랫동안 없다 아이가..하늘이 우리한테 얼 라를 않 주는 걸 우 짜 겠 심니 꺼..


안 그래도 요즘은 어 무 이가 종 현이 동생 아직 소식 없나 꼬 물어볼 때 마다 마이 죄 스 럽 더 라 꼬 예..부부간에야 아이가 들 어 서고 말 고 둘 모두의 책임이겠거니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시어머니에겐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 것이 많이 미안하던지 종 현의 엄마가 한마디를 한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여인들의 한결 같은 마음이리라.

아이를 임신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여인네의 책임이라는 그런 사회상의 반영이라고나 할까? 그 기 니 잘못도 아인데 너무 마음 쓰지 마라..

어 무이도 답답해서 그라 겠 제..

종 현이 낳고 얼 라가 안 들어서니까 네 또 당신처럼 니 도 더 이상 아를 못 가질까봐서 걱정 되가 그런 말 안했겠나..아버지가 엄마를 달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종 현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엄마와 아버지와 같이 자는 동안은 아랫목은 항상 아버지 차지였고 엄마하고 종 현은 윗목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잤다.

그런데, 종 현은 같이 자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시골이 거의 그렇듯 저녁 9시면 온 동네가 잠이 들던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죽도록 땅만 파먹고 사람들이라 저녁을 먹으면 대부분 잠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밤이 되면 종 현은 아버지처럼 엄마의 그곳을 직접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버지와 같이 자는데다...


왠지 그러면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각에 감히 옷 속에 손을 넣진 못했다.

한밤중에 몰래 엄마의 보지근처를 몇 번 더듬었던 적은 있었고, 갈라진 곳을 손끝으로 느꼈던 적도 몇 번 있었다.그때까진 그것이 성적인 흥분에 의한 것이라기 보단 단순한 호기심의 발로였기에 종 현이 더 이상의 진도는 없었다.

단지 자신도 모르게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고추를 조 물락 거리는 정도였다.67년에 종 현이 국민 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제 많이 컸으니깐 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자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빠구리 생 쇼를 포기할 수 없었던 종 현의 땡 깡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때가 삼대독자란 타이틀이 가장 빛났던 때였던 것 같다.그리고 이때가 종 현이 평생의 습관이 된 밤 귀가 밝은 사람이 되는 계기가 되었던 때였다. 항상 종 현과 같은 이불을 덮고 자던 엄마가 아버지와 빠구리를 하려면 같이 덮고 있던 이불을 나가야했다.

그런데, 종 현이 엄마와 아버지의 생 쇼를 보기위해 항상 긴장하면서 잠이 들었던 탓이다.


비록 종 현이 이때부터 밤 귀가 밝아졌다곤 하지만 아직은 어린 탓에, 어떤 때는 잠에 못 이겨 잠이 든 탓에 볼 수 없었다.

어떤 땐 엄마와 아버지가 하지 않아서 못보고... 뭐.. 그런 날이 더 많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몇 번 못 봤다.

68년에 그렇게 기다리던 종 현의 동생이 태어났다.

이번엔 여식 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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