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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하는마음에. - 프롤로그

관리자 0 3191


지워질 화장이라고 기대하면서,

벗겨질 옷일 것이라 기대하면서.

몇 시간동안이고 그와의 첫 만남에 공을 들였다.





울컥,하는마음에.

#프롤로그





“소영씨..?”

의외로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

순간 ‘그’라는 느낌이 왔지만 무어라고 불러야 좋을지 몰라 눈만 마주보고 있었다.

휴대폰 속에서 문자로만 만나 부르던 그와의 호칭을 입 밖으로 꺼내보는 연습을 하지 못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또 긴장했구나. 편하게 만나는 자리라고 그렇게 얘기 했는데.”

“ ...... 안녕하세요!”

뒤늦게 씩씩한 척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래.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자책하며 ‘편한 자리’를 다시 입으로 되뇌었다.

어느덧 자리를 잡고 앉아 가볍게 웃고 있는 그는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뭐해요~ 어서 앉지 않고.”

.... 여유로운 것 맞다. 문자로만 느끼던 ‘능글’거림은 실제로 마주하니 조금은 더 유쾌한 느낌이었다.



서로가 SMer인걸 알고 있으나

DS가 목적이 아닌 D와 S 단둘의 만남은

상당히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쏘맥?”

“네?”

“쏘맥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쵸?”

“.. 그렇긴한데.”



미묘한 감정은 개뿔.

쏘맥 좋지, 좋아.

나는 뭐 어쩌자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쏘맥을 좋아한다고 말해버렸던 걸까.



“메신저에서는 ‘또 낚였네요’라고 말만 잘 하더니. 긴장 안 풀려요?”

“으응..? 네? 아..!”



연한 눈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은,

휴대폰에 불을 밝히며 연락을 해 오고 있는 남자친구를 잊을 만큼

...



매력적이었다.



“아니다. 낯가린다고 했죠? 나도 긴장했나봐. 얼른 앉아요~”



조용한 어투로 메뉴판을 뒤적이며 무심한 듯 말하는 그의 말투에

그제야 가방을 내려놓고 얌전히 앉을 수 있었다.



음식을 시키고

수저를 놓고

컵에 물을 따르고

음식을 먹으며

무언가에 홀린 듯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후회해요? 나랑 만난 것?”

그렇게 여타 다른 말과 전혀 다를 것 없는 말투로. 그가 물었다.

후회하냐고. 그랑 만난 걸.



“... 모르겠어요.”

툭. 입밖으로 솔직한 심정이 터져 나와버렸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게 바로 모텔로 가길 바랬을텐데. 소영씬.”

말투는 그대로인데 입꼬리는 이죽거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묘하게 신경 쓰이던 반말과 존댓말의 경계도 엉크러지고 있었다.



“나도 질투가 나더라고. 근데.”

“...”

“자, 솔직해집시다. 나는 만나보고 싶었고, DS도 맺고 싶었고, 오늘 만남도 후회 없어요.”

그의 두 눈은 진심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만나보고 싶었고.. DS도 맺고 싶었...던 것 같은데. 오늘 만남은 잘 모르겠어요.”

“왜요?”

“... 아직요. 오늘 만남의 끝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니까요.”

“지금 현재로서는?”

“... 나쁘진 않네요.”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자, 기념으로 한잔해요.”



맥주가 쓰지 않았다.

분위기에 취한 맥주는 오히려 톡 쏘는 맛만 없다면 물 같다고 느끼게 했다.



맥주가 주는 청량감과 그가 주는 긴장감은 마음을 점점 들뜨게 만들었다.



"간단한 과제 한 번 해볼래요?"

낯설지 않은 그의 질문.

나는 매번 그 질문에 단호히 "싫어요"라고 답했었다.

"DS를 맺게 되면요, 그때요." 라는 단서를 붙여서.



긴장감에 마음이 들떠 있어서일까. 쉽사리 거절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 느꼈던 거부감은 점점 약해졌고

... 급기야 지금은 "뭐 어때"에서 "한번쯤은.." 하는 마음으로 변해있었으니.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마음이 점점 기울어 가고만 있었다.



그는

이물감이 느껴지는 예의 그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젠 다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까맣게 윤이나는 그의 구두위로

천천히

붓고있었다.



나는 멍하니

고의로 떨어지고 있는 아메리카노를 보며

그의 구두를 "핥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

아니.



그는 분명 "해볼래요?"라고 물었다.

거절할 기회는 아직..



"구두 좀 닦아줄래요?

오늘 소영씨 만난다고 신경써서 구두까지 닦고 왔는데, 그만 커피를 흘려버렸네요."



누군가가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절대 들킬 위험은 없는 자리였다.



그의 말에 홀린듯이

나는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구두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더이상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인식할 수가 없었다.

그를 만나게 된 것 자체가 이미 앞뒤 재지 못하고 울컥해서 약속을 해 버렸던 것 아닌가.



내가 움직일 핑계를 주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며, 내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그가 야속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서서, 얼마나 시간을 흘려보낸걸까.



.... 우유부단한 내 모습은 싫다.

뭐라도 결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그를 만나기까지 한 것.

이쯤이야 마음먹기에 따라 별 것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나. 둘밖에 없는 자리.

오늘은 그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지 않았던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조심스레

그의 구두에 입을 가져갔다.



구두냄새와 커피향은 묘하게 어울리며 내 기분을 자극했다.

누군가를 믿고 그를 위해 마음껏 복종..할 수 있다는 것에 아랫도리는 아플만큼 저릿거리고 있었다.



"... 다 닦은 것 같아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차마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 채 대답했다.





"나는 핥으라고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귓가에 들리는 저음의 목소리에 흠칫 떨면서 그를 쳐다봤다.



...

"내 섭이었으면 크게 혼났을텐데. ...앞서가지 말아요."

"아...."

"멋대로 짐작하고 멋대로 행동하는거 나쁜 습관이예요. 다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인건데. ?"

"...네."



눈앞이 새하얘지며 이 무슨 봉변인가 싶었지만

또 이렇게 하나를 배우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소영씨가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어때요, 소영씨는. 젖었어요?"

"네?! 아.. 그게.."

"푸핫, 이것도 돌직구예요?"



장난기를 되찾은 그의 목소리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짓궂은 그를 야속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그저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긴 했지만 그가 기분이 좋았다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고.



"소영씨 참 탐나는 사람이예요. 내 섭하라면 부담스러워 할 테니 더이상은 못하겠지만."



남자친구만 아니었다면 벌써 DS를 맺고도 남았다는 말은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남자친구랑 헤어질 일은 없을테니까....



현실로 이루지 못할 말.

입 밖으로 꺼내버리면 더욱 애틋해지고 마음만 쓰리다는 걸 알고 있다.

... 갑자기 방금 전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그를 만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미적지근하게 끝날 수 밖에 없는 관계.

시작은 왜 한 걸까 싶어 후회하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 좋으신 분인 것 같아요."

"오늘 한번도 날 안불러주네. 호칭, 어려워요?"

눈치채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들켜버렸다. 아니, 예민한 그라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하긴. 우리 호칭정리한적 없죠? 그저 닉네임으로 불렀을 뿐이니."

"...."

"그냥 불편하게 지내야겠다 그럼. 나는 소영씨한테 더이상 주인님 외 호칭으론 불리고 싶지 않으니."



장난치지말라고 대꾸를 해야하는데 이 남자가 주는 위압감에 쫄아들어 그러질 못했다.



"소영씨랑 DS 맺으면 가르칠 게 참 많겠어요."

".... 그래도 열심히는 배울텐데. 가르치는 재미는...... 없을까요?"



저걸 말이라고 하고 있는건지. 나도 참.

말꼬리를 흐리는 버릇은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거고. 열심히 배울 것 같지도 않아보였으면 오늘 만나자고도 안 했겠죠?"

어떤 관계에서든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준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가끔 이렇게 만나서 술도 마시고 해요. 난 좀더 긴장 안 한 소영씨가 보고 싶어요."

".. 네 저도 좋아요."



깔끔한 인상에 매너있는 그의 모습이 매력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 역시 그가 탐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5년을 만난 남자친구를 뒤로 하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내겐 굉장한 용기였는데,

내 몸은 그 이상의 탐욕을 원하고 있었다.



"자, 피곤할텐데 이젠 일어납시다."

"네"



늘 배려심 많은 그.

기대한대로 이뤄졌다면 그에게 실망했겠지.

그도 그저그런 남자들 중에 한명일 뿐이라며.

나는 분명 복 많은 여자이리라..



"앞으로도 시간과 용기 내서 내게 데이트 신청 해줘요. 좋았어요 오늘."



"일어납시다"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다음 만남을 기대하는 나 역시.

그저 웃음만 보일뿐.



그렇게 마음 한켠에 아련한 느낌을 남겨놓은 채 그와 인사했다.



그를 만나기 전에 나는

그와의 관계에 대해 걱정했던 것 같다.

DS도 맺은 것도 아니면서 연애놀이가 목적도 아닌 그 관계에서 어느 순간 그에게 흠뻑 젖어 있을까봐.

마음가는대로 흘러가다, 빠져나오지 못할 관계가 되어 버리면 그에게 빌미를 줬던 나를 자책할까봐.



생각이 많은 내게 그는

"앞서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 순간 분명히 움찔 했지만 생각할수록 마음 편안한 말 아닐까.



그를 믿고, 그를 따른다는 것.





.... 나는 오늘 그렇게.

그에게 한발짝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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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일기장에.

쉬운 일이 아니네요, "소설"을 쓴다는 것.

연결이 매끄럽지 않습니다만, 이대로 즐기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소영이와 "그"의 이야기를 그려볼 예정입니다.

그대로. 가벼운마음으로.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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