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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환 - 24부

관리자 0 3707


유희는 긴 손가락 사이의 담배를 입에 물었다.

도시 안의 움직이지 않는 공기 속으로 하얀 담배연기가 서서히 퍼져나갔다.



“휴...”



빨간 고혹적인 입술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는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대변하듯 무겁게 아래로 내려 앉았다.

유희는 천천히 난간의 틈으로 걸터 앉았다.

아랫쪽이 서늘했다.

오줌을 지릴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삼십여층 아래의 땅은 그림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타 들어간 담배를 난간에 비벼 껐다.

답답한 가슴은 한개의 담배로는 부족한 듯 유희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손에 잡혀 나온 담배각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담배갑이 유희의 손 안에서 구겨졌다.



“하나 드릴까요?



유희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한 남자가 자신을 향해 담배를 내밀었다.



“떨어지면 아프겠지요?”



“....”



남자는 여자의 중얼거림에 황당한 듯 쳐다보았다.



“많이 처참하겠지요? 아마도 팔 다리, 몸이 따로 놀지도...”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천천히 일어나 아랫쪽으로 내려가는 문으로 사라져 버렸다.



남자는 여자가 비벼 끈 담배를 쳐다보았다.

빨간 립스틱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오늘 예약은?”



“네, VIP룸에 열명 단체 예약 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주문은요?”



“스페셜 A코스로 주방에 말해 놓았습니다.”



“네, 오늘 저녁은 약속이 있어요. 우리 훈이 생일이거든요. 지배인님께서 마무리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유희는 잠시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였다.

“사모님 사랑합니다.”



“이러지 마세요.”



“사모님 정말 사랑합니다. 흑흑.”



유희는 이 황당한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는 남자가 불쌍하기도 했다.

대재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름을 대면 어느 정도는 알아주는 회사를 운영하는 남편을 만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한국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교수실로 찾아간 남편에게 교수실에서 면담을 하고 있던 유희가 눈에 뜨인 것은 무리도 아니었다.

학교에 입학 했을 때부터 유희가 듣는 교양과목은 항상 사람이 많았다.

유희를 보려 다른 학교에서도 원정을 올 정도였다.

하지만 남자라고는 평생 아버지 외에는 알지 못했던 순진한 유희는 뭇 남자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학년 때, 장학금을 전달 받으러 간 교수실에서 남편을 처음 보았고 그 후로 계속되는 남편의 구애는 엄청난 것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자란 유희는 난생 처음 세상의 온갖 화려함을 느끼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남편이 이미 결혼하여 아이들까지 있는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그때는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결국 남편의 세컨드가 되어 남편이 차려준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올해 일곱살이 되는 훈이와 살고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정도를 집에 들러 자고 가는 남편은 유희에겐 하나밖에 없는 남자였고 믿을수밖에 없는 가장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남편의 유희에 대한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주일 걸러 집에 오기도 하고 자고 가는 것은 한달에 한번도 안됬다.

잠자리에 있어서도 전희도 별로 없이 들어와 금방 사정하고 잠에 빠지는 남편이었다.

하지만 유희는 너무나도 착하고 순진했다.

피곤해만 보이는 남편이 불쌍하기도 했고 자신이 더욱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희가 이 형민이라는 사람을 안 것은 세 달 전이었다.

직업 소개서의 소개장을 들고 유희를 찾아 온 형민을 유희는 달가와 하지 않았다.

쭉 째진 눈과 웬지 야비하게 생긴 얼굴 표정, 그리고 삐쩍 마르고 작은 형민을 마음에 들어할 사람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어렸을 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소년가장으로 여섯살 어린 동생과 살아온 날들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눈가에 한방울의 눈물을 보고는 유희는 거절할수 없어 형민을 운전기사로 채용했다.

더우기 다음날 집으로 들린 남편도 형민을 보고는 별 반대를 하지 않았기에 유희는 불쌍한 형민을 운전기사로 정식 채용했다.

한달이 지난 후에는 훈이를 유치원으로 데려가고 데려오는 것까지 맡길 정도로 형민을 신임하게 되었고 더 이상 첫 인상에서 느낀 기분 나쁜 느낌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세달이 지난후 지금에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형민을 한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은 착한 유희의 마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형민은 그동안 정말 훈이와 유희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자주 셋이 공원을 놀러가기도 하고 시장을 보기도 했다.

훈이도 스무살이 넘게 차이나는 형민에게 형이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다.





유희는 갑자기 울린 벨에 눈을 떴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시계를 보니 작은 바늘이 열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운을 걸친 유희가 거실로 나가 인터폰을 보니 형민이 있었다.



“형민씨, 무슨 일이예요?”



“잠깐 드릴말이 있습니다.”



형민은 문을 열어주는 유희를 따라 거실로 들어왔다.

술냄새가 형민에게서 풍겼다.



“형민씨, 술 마셨어요?”



“네, 마셨습니다.”



“무슨일 있어요?”



유희는 처음 보는 형민의 모습에 걱정이 되었다.



“네. 있었습니다. 사모님 죄송하지만 물 한잔만 주실래요?”



유희는 서둘러 시원한 물 한잔을 형민에게 가져다주었다.



“형민씨, 말해 봐요. 무슨 일이예요? 제가 들으면 안 되는 일인가요?”



“...............”



물 한잔을 순식간에 들이킨 형민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을 지킨 형민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시작 했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저희 삼남매는 부자는 아니라도 행복하게 살았었지요. 제가 중학교 때 사고로 부모님과 저보다 세살 위였던 누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전 동생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형민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슬픔이 이는지 울음이 섞여 있었다.



“어렸을 적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해서 병원에도 실려 갔던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 동생을 대학까지 보냈었지요. 지금은 대학 졸업 후 미국에 유학 가 있습니다.”



유희는 작은 감동을 받았다.

철저하게 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의 형민이 그려졌다.



“형민씨 정말 대단해요.”



고개를 든 형민의 찢어진 눈가가 촉촉했다.



“살기 위해 앞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살아온 나날이었습니다. 정말 동생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요. 형민씨라면 그랬을 것 같아요.”



유희는 자신과 훈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형민의 모습이 생각나면서 말했다.



“그런데 어느날이었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던 제가 흔들린 것은...”



유희는 형민의 다음 말이 궁금했다.



“어느 날 저의 마음에 천사가 들어왔습니다.”



“천사라고요?”



“네.. 저같이 천하고 못난 놈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훌륭하고,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그런 천사가 하필 저의 마음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말이 어디 있어요.”



“아닙니다. 전 저 자신을 미친 놈이라고 자책하면서 천사를 떠나 보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그녀는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그리고 천사처럼 고귀한 사람이기에 저처럼 천한놈이 좋아하는 것 만으로도 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보같군요. 형민씨는....사람은 다 똑같아요.”



유희는 형민의 모습이 가련해 보였다.

저토록 열심히 살아온 남자라면 누구든 사랑할 자격이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천사를 잊기 위해 노력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 동안 누구보다도 행복했습니다.”



영호의 얼굴을 꿈을 꾸는 듯 몽롱해 보였다.



“그러나... 그러나 저는 그녀를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그녀는 저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그런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유희는 형민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동생뻘정도의 나이의 형민이 너무나 불쌍하고 가련해 보였다.



“힘을 내요, 언젠가 그녀도 형민씨 마음을 알아 줄거예요. 아니 고백은 해 보셨나요?”



형민이 유희의 손을 맞잡았다.



“아니요, 언감생심, 저같은 놈이 어떻게....”



“고백해 봐요. 그녀가 진짜 천사라면... 형민씨의 마음을 알아줄 거예요.”



“정말 그럴까요? 정말요?”



“네, 그럴거예요.”



유희는 환희의 표정을 짓는 형민을 보면서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사모님....”



“네? 형민씨?”



“사모님, 그 천사가 제 맘속에 들어온 것은 세 달전쯤이었습니다.”



유희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 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사모님.. 사랑합니다.”



“형민씨.........”



형민은 유희의 맞잡은 팔을 당겨 품에 안았다.



“사모님 사랑합니다.”



“형민씨...이러면...”



유희는 상상도 못했던 형민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 졌다.

그 상대가...나라니...



“사모님 정말 사랑합니다.”



“형민씨, 안되요, 전...남편이 있어요.”



“사모님, 사모님의 남편은 다른 여자가 있잖아요. 정말 이런 생활에 만족한단 말입니까?“



“그건....”



유희는 순간 할말을 잃었다.



“사모님같은 분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사모님처럼 아름답고 상냥하고 착하신 분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저토록 사랑스런 훈이가 왜 천덕꾸러기가 되어야 합니까?”



“무슨 말인가요?”



“사장님이 사모님을 멀리 하는것, 아시고 계시잖아요. 사장님은 이제 사모님이 귀찮아 지시거예요.”



“짝”



형민의 품을 빠져 나온 유희는 형민의 뺨을 갈겼다.



“어떻게 그런말을.....”



분노로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유희는 형민의 뺨을 때린 손이 아려왔다.



“사모님, 현실을 인정하세요. 언제까지 이렇게 바보같이 살려고 합니까...”



형민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유희를 쳐다보면서 말을 했다.



“휴...미안해요...”



유희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자신을 점점 멀리한다는 것을, 그리고 훈이한테도 역시 나날이 차갑게 대하는 남편의 모습을 알지 못할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앞으로 살아갈 것에 대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모님, 정말 사랑합니다.”



형민이 유희를 힘있게 껴 안았다.



“왜 이러세요.”



유희가 강하게 형민을 밀어 내었다.

이것은 아니었다. 정말 이것은 아니었다. 형민에 대한 마음은 자신과 훈이에 대해 잘해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지, 절대 남자로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모님, 전 사모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예요, 전 형민씨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 그리고 어쨌던 전 유부녀입니다.”



“바보같은 소리 말아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방금 사모님이 말했잖아요. 이야기 하라고.. 내 마음 속의 천사에게 말하라고.. 그럼 받아줄 거라고...”



“그건...”



유희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은 이런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전적으로 형민의 말이 옳았다.



“사모님 사랑합니다.”



형민이 다시 유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유희를 안고자 잡아당겼다. 하지만 유희는 그런 형민이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형민씨, 이건 아니예요. 안되요.”



온 힘을 다해서 밀어내는 유희에게 밀려난 형민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채념한 듯이 말했다.



“그랬구요. 전 그런 사람이었군요. 전 역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군요. 감히 사모님을 사랑할 자격도 없는...그런 비천하고 못난 존재였구요.”



“...........”



유희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크크...그래요. 하긴 저같은 놈이 언감생심 사모님을 사랑한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미친 짓이었어요. 지난 세달동안 그래도 행복했었는데...”



“...........”



“그래요. 그걸로 만족하겠습니다. 하지만 사모님 없는 세상은 저에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정말 그래요...아무 의미가 없지요.”



자조하는 듯한 웃음이 형민의 입가를 일그러지게 했다.



형민이 서서히 일어났다.

유희를 바라보는 형민의 눈가에는 촉촉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걸로 만족하렵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감히 저같은 놈이...”



“형민씨...”



유희는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정말 이 상황이 싫었다. 아무 말도, 그리고 아무 행동도 할수 없는 이 상황이..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전 사모님과 그리고 훈이와 함께 할 수 있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세달이었습니다.”



“형민씨...”



형민은 자조적인 웃음을 입가에 문 채 서서히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 쪽에는 문이 아니라 창문이 있었다.



“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거절당한 지금 제 인생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형민은 베란다의 문을 열고 나섰다.

유희는 갑자기 멍해졌다. 형민이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는데 한참이 걸렸다.

순간 유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민씨, 그러면 안되요.”



유희가 뛰어나간 베란다에서 형민은 바깥쪽 샷시를 열고 몸을 기울인 상태였다.

유희는 그런 형민의 하체를 잡았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안되요. 그렇다고 이건 아니예요. 형민씨 미쳤어요? 흑흑.”



유희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 나왔다.

웬지 모를 서러움이 가슴 가득히 채워졌다.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유희의 행동으로 인해 형민의 몸이 베란다 안쪽으로 내려졌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전 사모님 없이는 더 이상 살수가 없습니다. 말리지 마세요. 사모님게 부담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여기서 떨어지면 아무도 모를거예요. 그냥 모른척 하세요. 전 그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이니까요.”



형민은 자조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유희의 가슴을 후볐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형민씨는 훌륭한 사람이예요. 저보다도 더욱 훌륭한 사람이예요.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선 안되요. 저같이 못난 여자때문에 그래선 안되요.”



유희는 가슴이 아파 미칠 것 같았다.

형민은 그런 유희를 안아 서서히 가슴에 품었다. 유희는 정신 없이 형민을 꼭 안은채 품 안에서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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