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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 아름다운 - 1부

관리자 0 4202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전에 어설픈 낙서 두어개 올렸던 적이 있는 사람인데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군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두가지만 당부 드리겠습니다.

우선 제가 전에 올린 "그의 대학생활"과 "여고생"을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그걸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이 작품이 후속작품도 아니고 이어지는 작품도 아니긴 하지만 전의 작품을 모르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두어 장면 정도 나오기에 부탁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전의 작품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이면 추천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두 번째로 이 글을 읽으실 때 되도록이면 보통 소설을 읽듯 한 글자, 한 글자 정독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글이 소설이라고 불릴 정도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노력해서 쓴거니 대충 넘기지 않고 정독하시면 꽤 재미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그의 대학생활"이나 "여고생"보다도 더욱 "덜 야합니다";;;. 그러니 야한 장면만 골라서 읽으시려는 분이면 그냥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잡설이 길어졌군요.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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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 아름다운 (Our adolescence)

- 세레나데



Written By 끄적 from Sora"s Guide



Part I - Happiness



“김찬승 상병님 기상입니다. 20분 후에 출발이랍니다.”



침낭을 머리 끝 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자던 찬승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힘겹게 눈을 떴다. 걷어내기 싫은 침낭을 힘겹게 걷자 좁고 어두운 텐트 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김규택 일병의 모습이 보인다.



“벌써 4시야…. 아으 지겨워….”



찬승은 억지로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짧은 머리를 긁적였다. 대충 전투화를 신고 텐트 밖으로 나오자 쌀쌀한 새벽기운이 그의 몸을 살짝 떨리게 한다. 완연한 봄이라 할 수 있는 5월 초순이지만, 새벽의 야산은 아직 춥기만 했다.

찬승이 길게 하품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여기저기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새벽의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모두들 일어나서 텐트를 해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찬승이 김규택 일병과 함께 굼뜬 동작으로 텐트를 해체하고 있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김찬승이 빨리 안 하노?”



“최진호 병장님. 이번엔 얼마나 간답니까?”



찬승은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러나 최진호 병장은 화를 내기는커녕 자신의 텐트로 다시 돌아가며 대답했다.



“몰라. 그냥 정상에 있는 거점 점령한다카지 않았나?”



최진호 병장의 말에 찬승은 다시 묵묵히 텐트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



20분이 지난 후 찬승이 속해있는 2소대가 거점을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부분대장인 찬승도 자신의 분대 뒤에서 군장을 메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의 어둠 속에 소대원들의 발소리와 가끔씩 들려오는 P-96K의 시끄러운 잡음이 울린다….

연대전술훈련…. 찬승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남들은 잘 걸리지도 않는 훈련인데 재수 없게 군복무 기간 중에 걸린 것이다. 게다가 유격훈련도 두 번이나 받는 군번이었다.

하지만 찬승은 중대전술훈련 같은 소규모 훈련보다는 편하다고 생각했다. 중대장 밑에서 빡세게 구르는 것보다 그저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걷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2003년 1월에 입대한 것이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상병을 달고도 5개월째이다. 이등병 때 GOP에 들어와 얼마 있다가 철수하자, 한 무더기의 병장들이 우르르 전역을 했다. 그리고 일병을 달자 또 다시 한 무더기의 병장들이 전역을 했다. 찬승이 상병을 달았을 때에는 중대에서 고참이 10명 남짓이었다. 그것도 3~4개월 차이나는, 이등병 때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일병들 말이다. 찬승은 일명 풀린 군번이었다.



“후우….”



찬승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간 날을 돌이켜보면 짧지만 앞날이 막막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자 주위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앞에서 굵직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10분간 휴식이랍니다!”



찬승은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저 멀리 산 능선으로 조금씩 떠오르는 아침 해가 눈에 들어왔다.



‘씨바…. 생일날 아침 해를 산에서 볼 줄이야.’



오늘은 찬승의 생일이었다. 이등병 때는 소대에서 한번 챙겨줬지만 이번 생일은 말도 꺼내지 않았다. 고참들의 장난도 무섭거니와 훈련 중이니 챙길 일도 없는 것이었다.

생일 날 아침 떠오르는 해를 보자 기분이 묘했다. 군대라는 곳이 참 별 이상한 경험 다 해보게 한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울적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힘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이번 주 토요일을 생각하면 말이다….







2002년…. 찬승은 서울 구석에 있는 대학교의 법학과에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과의 지금 여자친구를 만났다. 준수한 생김새에 재밌기까지 한 찬승은 여자 동기들로부터 꽤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찬승은 그 중 한명인 이은설이라는 이름의 여자 동기를 사귀게 되었다. 큰 눈에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로 찬승에게 꽤나 적극적으로 대시하던 여자애였다.

여자를 처음 사귀는 찬승이었지만 둘은 꽤 잘 사귈 수 있었다. 순진하고 소심한 찬승은 첫 키스도 사귄지 무척 오래 지나서야 시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밤늦게까지 논 어느 날 근처 여관에서 처음으로 섹스를 하게 되었다.

찬승은 처음 해보는 섹스라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여자친구도 처음이라고 하였다. 당시 찬승은 처음 보는 여자의 나신에 너무나도 정신이 없어서 신경도 못 쓰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여자친구는 처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확실히 아니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흐르는 보지물…. 일말의 저항도 없이 부드럽게 열리는 여자친구의 보지…. 그리고 고통을 하나도 느끼지 않는 표정…. 그러나 소심한 찬승은 여자친구에게 한마디도 물어보지 못했다.

찬승과 은설은 그 후 일주일마다 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찬승은 점점 더 여자친구가 첫 경험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은설의 허리를 돌리는 움직임이 순진한 찬승 조차도 예사롭지 않다고 느낄 정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설은 평소에는 얌전하고 스킨십도 잘 하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술에 취하기만하면 180도로 변했다.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아무데서나 키스하고…. 게다가 술에 취한 채 섹스를 하면, 은설은 찬승의 위에 올라가 숨이 넘어갈 정도로 높은 신음 소리를 지르며 마구 허리를 들썩 거렸다. 평소와 달리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돌변해서 섹스에 매달리는 모습. 분명히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찬승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여자의 과거 따위에 연연하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설을 너무나도 사랑하였고 지금 자신과 잘 사귀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대 가기 직전 2박 3일로 겨울바다도 보고 왔다….







‘후우…. 정말 좋았는데….’



찬승은 겨울바다에 있는 펜션에서 여자친구와 나누었던 뜨거운 섹스를 떠올렸다. 2박 3일 동안 열 번은 한 것 같다…. 백일 휴가 때도 매일 했다. 일병 휴가 때도 침대에서 끌어안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찬승이 군대 있는 동안 편지도 매일 같이 왔다. 상병을 단 2004년부터는 거의 오지 않았지만….

이은설…. 그 여자친구가 이번 주말에 면회를 온다고 한 것이다. 요즘 들어 전화를 해도 퉁명스럽게 받고, 아무리 면회를 오라고 해도 안 오던 여자친구가 드디어 자기 스스로 온다고 한 것이다. 아마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오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이 들자 찬승은 기분이 좋아졌다.

찬승은 여자친구와 외박을 나갈 생각이다. 예전에 한 번 외박을 나가 방을 잡고 뜨거운 섹스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사회에서도 좋았지만 군대에서 생각하니 여자와의 섹스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출발 1분 전입니다!”



찬승의 기분 좋은 상상을 깨트리는 한마디가 들려왔다. 그러나 찬승은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이번 주말에 여자친구를 어떻게 애무 해줄까, 어떤 자세로 박아볼까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



“와-! 너무하지 않나? 남들은 훈련 후 정비하느라 빡신데 외박 나가고 앉았고.”



깨끗한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번쩍거리는 전투화를 신고 있는 찬승에게 최진호 병장이 농담조로 말했다. 찬승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여자친구 면회 왔는데 어떻게 합니까?”



“알았다 인마. 너무 힘 빼고 오지 마.”



“예. 다녀오겠습니다.”



전투화를 다 신은 찬승은 내무실을 나가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면회소로 향했다. 면회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볍다. 평소에는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 전투화가 지금은 아무런 느낌도 나질 않는다.



‘지금 간다. 은설아.’



찬승은 미소를 지으며 면회소에 도착했다. 면회소 문을 열자 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길고 검은 머리를 반 묶음해서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노란색의 티셔츠에 하얀색의 스커트를 화사하게 입고 있는 그녀….



“은설아!”



찬승은 오랜만에 만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반갑게 외쳤다. 8개월 만에 보는 여자친구다. 여전히 아름답구나….

은설은 방긋 웃음 지으며 찬승을 바라봤다.



“오랜만이네.”







찬승이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동네는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으레 부대 주변이 그러하듯 근처에는 숙박업소가 가득했다.



“우리 일단 여관부터 잡자.”



찬승은 은설의 손을 잡고 일병 때 한번 같이 갔던 태원장을 찾아가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은설이 찬승의 손을 잡아끌었다.



“나 배고파. 밥부터 먹고 가자.”



“어? 어…. 그래. 점심 안 먹었구나.”



은설의 말에 찬승은 잠시 민망해졌다. 사실 여관방을 잡자마자 우선 뜨겁게 한번 섹스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쳇. 조금만 참지 뭐….’



찬승은 잠시 후 있을 은설과의 섹스를 머릿속에 떠올리자 아랫도리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둘은 조그만 분식집에 들어가 은설이 좋아하는 김치볶음밥과 떡볶이를 시켰다. 찬승도 여자친구 때문에 김치볶음밥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찬승이 한참을 맛있게 먹는 동안 은설은 몇 숟가락 먹지를 않는다. 그런 여자친구가 이상해 찬승이 물었다.



“어? 왜 안 먹어?”



“어? 어…. 저기…. 찬승아.”



“왜?”



“우리 헤어지…자.”



막 떡볶이 하나를 집어 입에 가져가려던 찬승의 손이 멈춘다. 은설의 말이 이어졌다.



“나…. 작년에 들어온 03학번 후배 중에 날 좋아하는 애가 한명 생겼어. 나도 처음엔 찬승이 너 때문에 싫다고 했는데…. 그 애가 날 너무나 좋아해서. 미안….”



찬승은 들고 있던 떡볶이를 내려놓고 묵묵히 듣고 있었다. 소심한 찬승은 은설을 쳐다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면 그녀가 지금 당장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앞에 붙잡아 두고 싶어 그저 분식집 테이블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은설은 아무 말이 없는 찬승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예전에 너한테 물었지? 만약 여자친구가 바람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때 너가 나한테 했던 말 기억나…?”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변하면 그 사람 놓아줘야 된다고 생각해. 그 사람 정말로 사랑하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 사람이 날 떠나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행복하다면, 그것이 그 사람을 위한 길이라면 놓아주는 것이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찬승은 예전에 은설에게 했던 말을 줄줄이 내뱉었다. 찬승이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연애관이었다. 마음씨 착한 찬승은 자신의 연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순순히 보내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다니….



“기억하고 있었구나…. 미안. 다 기다리지 못해서…. 나중에 혹시라도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했으면 해. 몸 건강히 잘 지내. 나… 갈게.”



은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승은 그때까지도 묵묵히 테이블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소심한 찬승은 여자친구에게 한마디 따져 묻지 못한다. 그런 찬승을 바라보던 은설은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찬승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안자고 가? 자고 가….”



“뭐…?”



은설의 어이없다는 듯한 대답. 은설의 대답을 들은 찬승은 자신이 최저의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은설이 자고 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니….

찬승이 다시 아무 말이 없자 은설은 몸을 휙 돌려 분식집을 빠져나갔다.



*



“아가씨 불러줄까요?”



찬승이 혼자 방을 잡으려는 것을 보고 여관아저씨가 물었다. 그러나 찬승은 여자와 섹스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돈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아니요….”



찬승은 여관방으로 들어와 힘없이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마지막 헤어지기 전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최악이다 진짜….’



찬승은 짧은 머리를 마구 긁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다.



‘이제 혼자구나….’



찬승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요즘 전화를 해도 잘 받지를 않고, 혹시 받아도 바쁘다며 금방 끊곤 했다. 새 학기가 시작 되서 바쁜가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후배라는 남자애랑 잘 되가는 걸 찬승이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 찬승은 은설에게 편지를 별로 써주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작년에만 해도 은설은 편지를 매일 같이 보냈다. 그러나 찬승은 6개월에 한번 편지를 쓸까 말까였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게다가 그냥 편지를 받고 전화를 해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잘 해준 것이 없네….’



누워있는 찬승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침대시트로 떨어졌다. 여자친구가 떠난 것보다 자신이 못해준 것이 떠올라 오히려 미안하다….



“흑…. 은설아….”



찬승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흘러내린다.



*



“충성! 신고합니다! 병장 김찬승은 2005년 2월 4일부로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충성. 그래. 찬승이 그동안 수고했다. 사회에 나가서도 군대에서처럼 잘하고….”



찬승은 아무 이야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중대장님의 이야기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위병소를 지나 서울에 있는 집까지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윽고 중대장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찬승은 당당하게 전역을 하게 되었다. 위병소로 떠나는 찬승에게 친하게 지냈던 후임병들이 몰려나와 한마디씩 건넸다. 그리고 그중에는 어제 찬승을 괴롭히지 못해 억울해하는 후임병도 있었다.



“아. 어제 모포말이 했었어야 하는데…. 너무 하는거 아닙니까?”



“그래. 어제 김찬승 병장님. 아니지. 찬승이형 밤새 간부관사에 있지 않았나? 정말 너무하다.”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다음에 면회 올 때 맛있는 것 사올게. 그리고 군 생활 빨리 가니까 걱정마라.”



웃으며 얘기하는 찬승에게 후임병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우와. 웃긴다. 빨리가긴 뭐가 빨리 갑니까? 어서 집에나 가십쇼.”



찬승은 그렇게 후임병들과 헤어지며 자신이 군 생활을 했던 중대를 떠나게 되었다. 위병소를 지나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는 곳으로 걸어가자니 무언가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든다. 주위에 조그만 마을과 논, 산으로 가득한 이곳…. 아침에 구보할 때 매일 지나다녔던 곳이다. 그렇게 귀찮고 힘들었던 곳인데 지금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다시 오라면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척 그리울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찬승은 의정부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자 슬슬 집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어머니가 전화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찬승아. 너…. 말뚝 박을 생각 없니? 서희 이번에 학비 내기도 빠듯한데….]



[안 해요. 안 해! 나갈 거예요!]



찬승은 농담조로 말한 어머니의 말씀이 무얼 뜻하는지 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이다. 여동생인 서희도 이번에 대학교에 올라가고, 조그만 중소기업에 다니시는 아버지의 벌이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절했다. 다른 것은 다 되도 군대에 말뚝 박기는 싫었던 것이다. 게다가 찬승은 이미 예전에 자신의 꿈을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 쭉 피아노를 쳐오던 찬승은 고등학교 진학문제를 놓고 부모님과 크게 다투었던 일이 있었다. 찬승은 예술 고등학교나 예대 입시를 위한 음악학원을 다니길 원했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예술 쪽은 여러모로 돈이 무척이나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찬승은 좋아하는 피아노를 접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찬승은 어머니의 말씀과 예전 일이 떠오르자 심통이 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후우…. 몰라. 알바라도 하면 되지….’



찬승은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어머. 정말 나왔네. 우리 아들 실망인데….”



“으….”



찬승은 현관에서부터 자신을 반가워하지 않는 어머니를 보며 인상을 썼다. 그러나 찬승은 이런 어머니의 행동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이미 모든 가족들이 병장 때부터는 휴가를 나와도 반가워하기는커녕 또 나왔냐는 식으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서희는요?”



“친구들이랑 놀러갔지.”



찬승은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말년휴가 때와는 달리 깔끔하고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방이 찬승을 환영했다. 찬승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치워주신 것이었다.



‘후우…. 그래도 역시 어머니 밖에 없구나.’



찬승은 자신의 침대로 몸을 던졌다. 푹신하다. 군대에서의 얇은 매트리스와는 비교도 안 된다. 너무 편하다…. 이 느낌….



“이제 사회인이다….”



찬승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꽤나 고생을 해야 했다.



*



“뭐? 바쁘다고? 어…. 그래 알았어. 그래. 담에 보자….”



찬승은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몇 통째인지 모른다. 대학교 때 여자동기들과 만나보려 했지만 모두들 바쁘단다.



‘쳇…. 하긴 내가 여자친구 사귀고 대학교 친구들이랑 논 적이 없지…. 그런 나를 얘들이 왜 만나주겠어. 으휴! 그때 잘할 걸….’



정말 생각해보니 1학년 때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여자친구 이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여자친구를 만난다고 남자동기들과도 못 어울렸는데…. 정말 혼자가 된 것이다. 복학해서 혼자 학교를 다닐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1학년 때 혼자 다니는 복학생들을 보며 뒤에서 마구 비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최악이다….

찬승은 이은설을 떠올렸다. 헤어진 후 두 달 정도 지나자 슬슬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나 정작 만나면 아무 말도 못할 것 같다….



‘잘 지내려나….’



“오빠!”



문득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이 거칠게 열리며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가 들어왔다. 찬승의 여동생 서희였다.



“야! 넌 노크도 못해?”



찬승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서희가 웃으며 말했다.



“흥. 군바리 주제에.”



“으…. 이제 사회인이란 말이다. 아. 수시 붙었다고 했지? 축하해.”



찬승의 말에 서희가 기쁜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좀 낮춰서 수시를 썼거든…. 그래서 4년 전액장학금으로 다니기로 했어.”



“뭐? 전액장학금?”



찬승이 무슨 소리냐는 듯 놀라 묻자 서희가 말을 이었다.



“응. 이번에 수능 1등급 나오면 수시 합격에 전액장학금 예정이었거든…. 근데 1등급 나와서 합격했어! 물론 대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학점이 나와야 된데….”



서희의 말에 찬승이 놀라운 듯 입을 벌렸다. 여동생이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과 달리 공부에 엄청난 소질을 보이는 동생…. 전교에서 톱을 다툴 정도였으니 딱히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서희도 집안 사정을 위해 최상위권의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꿈을 포기한 것이다. 물론 지금 들어간 대학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대학이다.

찬승은 동생을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큰 눈망울에 새하얀 얼굴이 매력적인 여동생은 예쁜 외모로 중고등학교 때부터 남자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었다. 게다가 몸매도 늘씬하고 무엇보다 가슴이 꽤 큰 편이었다. 그래서 뭇 남학생들의 구애를 많이 받았지만, 서희는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까지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대단하다. 전액 장학금이라니…. 뭐…?’



찬승은 서희를 스쳐지나 거실로 나갔다. 어머니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다 방에서 급하게 뛰쳐나온 찬승을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봤다.



“서희 학비 때문에 말뚝 박으라면서요!”



“아. 서희한테 말하지 말라는 걸 깜빡했네. 내 정신 좀 봐.”



“으….”



찬승은 인상을 썼지만 다행이다 싶었다. 마음 한편에 있던 무거운 짐이 약간이나마 벗어지는 느낌이었다.



*



“뭐? 휴가 나왔다고? 민혁이랑 같이? 어. 그럼 인마 당연히 만나야지. 알았어. 오늘 저녁에 보자.”



찬승은 싱글거리며 자신의 낡은 핸드폰을 끊었다. 어머니에게 다시 사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해서 군대 가기 전에 쓰던 낡은 핸드폰으로 개통시킨 것이다.

민혁은 찬승의 고등학교 친구다.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이 휴가를 나온 것이다. 마침 찬승이 전역했을 날짜였기에 같이 놀기로 한 것이다.



‘유후-! 알바도 잘 안구해지는 참이었는데.’



요 근래 며칠 동안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했는데 구해지질 않았다. 찬승은 다른 아르바이트보다는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알바를 하고 싶었다. 근데 의외로 쉽게 구해지질 않았다.



‘천천히 구하기로 하고…. 음…. 돈이….’



찬승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봉투 안에 들어있는 파란색의 지폐들…. 군대에서 15만 원 정도를 모아왔다. 찬승은 그 중 5만 원을 꺼내 지갑에 넣어두었다.



*



찬승은 동네 술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승규, 민혁과 함께 술을 마셨다. 어느 정도 마시고 나자 민혁이 주위를 둘러보며 솔깃한 제안을 했다.



“야. 우리 나이트 가자.”



“나이트?”



“그래! 오랜만에 여자 좀 안아봐야지. 찬승이 너도 여자친구랑 헤어졌다며?”



민혁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자 찬승이 장난스럽게 화를 냈다.



“에이. 새끼…. 언제 적 일인데.”



“그래. 너도 여자 안아본지 꽤 됐을 것 아냐.”



민혁은 계속해서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찬승과 승규를 설득했다. 그러자 승규가 찌개 국물을 한 숟가락 먹은 뒤 입을 열었다.



“야. 근데 성공 못하면 어떡해? 그냥 돈 날리는 것 아냐.”



“기본 시켜놓고 부킹만 하면 되지. 성공 못하면 그냥 놀았다고 생각하면 되고. 가자. 가자.”



민혁의 집요한 설득에 결국 넘어간 두 사람…. 결국 지하철을 타고 종로에 있는 나이트에 가기로 합의를 봤다.

나이트에 들어가 테이블을 잡고 맥주기본을 시키자 잠시 후 웨이터가 여자 손님을 한명 씩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혁은 웨이터가 데리고 오는 여자 손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별로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렇게 여자 손님이 바뀌길 몇 차례…. 이윽고 민혁의 옆에 꽤 예쁘장한 여자 손님이 앉게 되었다. 민혁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찬승과 승규의 부러운 시선이 민혁의 얼굴에 꽂혔다. 여자도 스타일이 나쁘지 않은 민혁이 싫지 않은 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여자가 찬승과 승규를 번갈아 보더니 민혁의 귀에다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찬승과 승규는 부러운 마음에 맥주만 들이켰다.



“야!”



민혁이 그런 둘을 향해 소리를 질렀으나 둘은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민혁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얘 친구들 두 명 같이 왔데! 같이 놀재!”



반응이 없던 찬승과 승규는 민혁의 말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민혁의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자신의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왔다. 찬승과 승규는 둘을 보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둘 다 무척 예쁘다…. 아니 셋 다 예쁘다. 뭐하는 애들이 이렇게 예쁜 애들끼리만 뭉쳐 다니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찬승은 자신의 옆에 앉는 여자를 보고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셋 중 가장 예쁘다면 가장 예쁘다.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의 얇은 니트를 입었는데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것이 몸매가 예술이었다. 가슴은 동그랗고 봉긋하게 솟은 것이 딱 한손에 들어오는 크기였다. 게다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샤기컷의 머리가 그녀의 섹시한 느낌을 더욱 진하게 살려주었다.

여자는 찬승의 옆에 앉아 과감하게 다리를 꼬았다. 그러자 검은색의 짧은 미니스커트가 말려 올라가며 허벅지가 깊숙한 곳 까지 드러났다. 살이 약간 붙어 있어 더욱더 탄력 있고 섹시한 느낌을 주는 허벅지였다. 찬승은 그런 그녀의 허벅지를 힐끔거리며 훔쳐본 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예요?”



찬승이 입을 열자 여자가 자신의 귀에다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안 들리니 귀에다가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찬승은 다시 여자의 귀에 대고 물었다.



“풋-!”



그러자 여자가 웃음을 터트린다. 찬승은 어리둥절했다.



‘아니…. 웃긴 왜 웃어.’



여자는 잠시 미소를 짓더니 찬승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름 알아서 뭐하게? 그냥 야라고 불러.”



여자의 말에 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으론 기분이 약간 상한다. 척 봐도 자기보다 어려보이는 여자가 초면에 반말이라니…. 찬승은 나이를 물어보기로 했다.



“몇 살이…야?”



존댓말을 하려다가 자기도 그냥 반말을 쓰기로 했다. 찬승의 질문에 여자가 다시 말한다.



“너 나 좋아하니? 왜 자꾸 그런 걸 묻고 그래?



여자의 말에 찬승은 얼굴이 벌게졌다.



‘아니! 뭘 알아야 이야기를 하지…. 으씨….’



찬승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친구들을 봤다. 모두들 자신의 옆에 앉은 여자와 시시덕거리며 재미나게 이야기를 한다. 찬승이 그런 친구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자 여자가 말했다.



“왜 부러워?”



“아, 아니…. 부럽긴 뭐가 부러워. 하하.”



찬승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자 여자가 미소를 짓는다.



“푸핫. 귀여운 구석이 있네. 근데 왜 니네 셋 다 머리가 짧아? 군인이야?”



“응? 아니. 쟤네 둘은 휴가 나왔고. 난 얼마 전에 제대했어.”



찬승은 이야기하면서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여우같은 눈으로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며 계속해서 반말을 하는 여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보면 무척 예쁘고 섹시하지만 밖에 나가면 어떻게 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왜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가? 나이트에서 보고 반했다가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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