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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 4부

관리자 0 3417
요새를 수비하는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드레스덴으로 진군하는 나폴레옹 군대처럼 매우 인상적인 속도로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녀는 작년 이맘 때 마나스 레아 포스카티에서 구입한 흰색 플랫웻지 샌들을 신고 집을 나섰다.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해보니 예매해 두었던 버스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스파크는 아파트 관리소에서 조경 삼아 심어놓은 자그마한 측백나무 옆에 얌전히 세워놓았다.

며칠간 점화 플러그에 스파크 튈 일은 없을 것이다.

부모님이 사는 지방 도시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인데다 휴가철 고속도로가 붐벼서 차를 운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질긴 노란 색 패브릭으로 만들어진 진저백을 메고 코가 매우 성기게 짜여진 루즈핏 그물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햇빛이 없는 흐린 날이었지만 습하고 무더워 목덜미로는 줄곧 땀이 흘렀다.

땀이니 습기니 하여튼 축축한 대기는 조금만 더 있으면 가디건으로 그물을 던져 오징어라도 잡을 수 있을 만큼 젖어 있었다.

얼른 지하철을 타고 아이스크림처럼 냉방된 실내에서 무더위를 피할 생각에 부지런히 역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걷고 있는 인도 옆으로 8기통 엔진이 달린 S 클래스 벤츠 AMG 한 대가 요란하게 멈춘 것은 지하철 입구 계단이 보이는 사거리 조금 못미치는 곳에 왔을 때였다.

내부가 안 보일만큼 짙게 썬팅된 차 문이 벌컥 열리더니 1992라는 의미불명의 숫자가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원포인트 프린트의 짙은 남색 반팔 티셔츠와 오일 왁싱된 검은 색 진을 입은 남자가 뛰어나왔다.



그는 휴고보스의 세련되고 날렵한 밤색 뿔테 안경을 쓰고 대학생으로 보일만큼 선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어울리지 않게도 티셔츠가 찢어질 만큼 팽팽한 가슴근육과 덤프트럭의 타이어튜브 만한 상완근을 가지고 있었다.

"누나, 여기 있었구나."

그가 마치 10년전에 헤어진 형제를 찾은 것처럼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고 당황스러워 그 자리에 멈춰 얼떨결에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아는 사람인가..그러나 그의 걱정스럽고 놀랍고 반가워하는 몇 겹의 표정을 걷어내고 보더라도 그 얼굴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누구세요?"

그는 그녀 앞으로 바짝 다가와 그녀의 두 어깨를 움켜잡았다.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왜 그렇게 말도 없이 나갔어."

그가 그녀의 어깨를 뿌셔뿌셔 봉지를 흔들어 스프 섞듯이 사정없이 흔들었다.

"아니, 잠깐.."

그녀는 그의 손을 밀어내려 했으나 엄청나게 센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그들을 돌아보았으나 웃음을 짓거나 별다른 표정없이 그대로 지나쳐갔다.

이빨이 부딪힐만큼 그녀를 흔들어대던 남자는 곧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의 정수리가 그의 턱 쯤에 위치할 만큼 장신이었다.

"누나, 괜찮대. 의사 선생님이 잘못 검사한거래. 누나 아무 일 없대."

반가워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그는 필요이상으로 소리를 질러대며 그녀를 자신의 몸에서 떼었다 붙였다 반복했다.

간신히 말할 기회를 잡은 그녀가 그의 가슴을 밀어내려고 애쓰며 말했다.

"누구세요? 사람 잘못 봤어요."

그는 그녀의 어깨 바로 밑부분을 움켜잡고 차 쪽으로 잡아 끌었다.

"일단 집에 가서 얘기하자. 누나. 엄마가 찾아."

그의 손이 얼마나 컸는지 그녀의 팔이 마치 아기 손목 잡히듯이 한 손에 잡혀들어갔다.

어깨에서 진저백이 흘러내려 그의 팔뚝에 걸렸다.

그가 뭐라고 계속 줄창 소리를 질러대며 끌어대는 통에 뭐가 뭔지 혼란스러웠지만 차 쪽으로 데려가려 하자 그녀는 정신이 버쩍 들었다.

이게 혹시 말로만 듣던 납치가 아닌가..

그녀는 허리를 뒤로 빼고 끌려가지 않도록 두 발로 단단히 버티며 소리를 질렀다.

"잘못 봤다니까. 너 누구야?"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배에 강한 충격을 받고 숨을 멈춰야했다.

폐에 있던 공기가 일순간 소진되는 느낌.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

압착기에 눌린 것처럼 몸이 오그라들었다.

그녀는 근육이 경직되며 모로 쓰러지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짧은 순간에 남자가 그녀의 복부를 가격한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누나를 걱정하는 동생으로 보이는 허우대 멀쩡하고 선량한 대학생이 그녀의 가디건 단추부분에 손바닥을 갖다대며 재빨리 옷을 움켜잡았다 놓는 것만을 목격했을 뿐이었다.

아마도 오랜 기간 격투기를 익힌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한 눈에 알아봤을 테지만 그것은 제로 디스턴스 펀치로 촌경이라고도 부르는 타격법이었다.

그는 손목의 스냅만으로 그녀 명치에 있는 복강신경총을 때려 일시적으로 횡경막을 정지시켜 버린 것이다.

날숨에 느닷없이 복부를 얻어맞은 그녀는 숨을 못쉬어 얼굴이 빨개지고 고통스럽게 입이 벌려졌다.

그녀가 허리를 꺾으며 옆으로 넘어지려고 할 때 남자는 마치 왈츠를 추듯이 앞으로 바싹 붙으며 그녀의 왼팔을 든 후 겨드랑이 아래로 자신의 목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밸런스를 자신에게 이동시키도록 자연스럽게 턴하여 그녀가 그의 오른쪽 가슴에 달랑 매달리게끔 만들었다.

그는 그의 목을 두르고 있는 그녀의 팔을 바짝 끌어당겨 주관절 상과라고 부르는 팔꿈치뼈 바로 윗부분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종이 한장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빈틈없이 그에게 밀착되었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계속해서 누나를 외치고 있었다.

"그봐. 이렇게 아프면서. 괜찮아? 괜찮아? 왜 집을 나가,왜? 이 바보야."

그녀는 반항은 둘째치고 한 줌의 공기라도 폐 속으로 집어넣기 위해 몸부림쳤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침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누나, 이렇게 나와버리면 엄마,아빠가 얼마나 걱정하는줄 알아? 나랑 삼촌이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냐구."

그는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며 왼손으로는 그녀의 팔꿈치를,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짧은 오렌지색 쉬폰 원피스의 치마 부분을 들추고 엉덩이 쪽에서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그녀의 사타구니를 치켜 올려잡았다.

레오파드 무늬의 얇은 폴리스판 삼각팬티가 구겨지며 그녀의 성기와 함께 그의 손안에 들어갔다.

그녀는 숨이 막혀 사지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사타구니를 움켜잡은 그의 손을 치워보려고 나름 안간힘을 썼으나 꼼짝할 수가 없었고 이 후안무치한 짓을 누군가 보고 도와주길 간절히 바래보았지만 그의 손은 늘어진 원피스 밑단에 교묘하게 가려져 밖에서는 잘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어깻죽지를 축으로 삼아 사타구니를 바짝 들어 그녀의 두 다리를 살짝 띄운 다음 그녀를 승용차 뒷자석으로 가볍게 운반했다.



"누나,이제 정신 좀 차려."

뒷자석에 그녀를 실으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들으라는 듯이 울음섞인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는 자신도 그 옆에 앉아 재빨리 문을 닫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 출발했고 그는 손에 걸려있던 그녀의 백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뒷자리엔 이미 짧은 머리의 남자가 한 명 타 있었는데 마치 인계를 받듯이 그녀를 잡아 뒷목을 자신의 무릎사이에 내리눌렀다.

안경을 썼던 남자는 돗수가 없었던 안경을 벗고는 통나무를 껴안듯 그녀의 옆구리를 뒤에서 안아 배를 들어올렸다 내리는 방식으로 충격을 몇번 주어 복부의 긴장을 완화시켰다.

그녀는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첫 숨이 터지자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걸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얼마 걸렸냐?"

뒷자석에 미리 앉아 있던 사내가 쉰 목소리로 웃었다.

"40초."

"그봐, 씨발 놈들아. 1분 안걸린다고 했지. 아..소리지르니라고 목이 다 쉬었네. 좆두."

"신고하는 새끼 없겠지?"

그 말에 티셔츠 사내는 차창 밖을 내다보았으나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구경꾼들도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구경하던 사람들도 비싸보이는 고급 승용차와 너무나 재빨리 정리된 상황에 별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가던 길을 갔던 것이다.



"왜들 이러세요.."

그녀는 고개를 들려고 했으나 무릎 위로 내리누르는 힘이 너무 강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허벅지를 잡았다.

"썅년아. 조용히 하고 내말 똑바로 들어."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엎어져 있는 그녀의 등 위로 바짝 몸을 숙이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핸들과 블레이드가 모두 스테인레스 스틸인 일체형 거버폴딩 나이프의 아주 짧고 예리한 칼날을 천천히 펴서 그녀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내가 이래뵈도 연봉 1억2천의 칼잽이야. 씨발 년아,니가 칼잽이 연봉 1억2천이라면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이 업계 최고란 뜻이야."

그가 손쉽게 그녀의 한 손을 꺾어 등뒤로 바짝 붙였다.

그녀가 갑작스런 아픔에 몸을 틀었다.

"근데 누가 날 고용했네. 너 잡으라고. 이 년아, 이게 얼마나 열불나는 일인지 알아? 껌딱지 만한 계집년 잡을려고 오늘 새벽부터 차 속에 박혀있어야 했어. 씨발년."

그는어금니 사이로 잔뜩 억눌린 음성을 스산하게 내뱉었다.

"그 시간이면 특전여단 1개소대 정도는 포를 뜨고도 남았어, 알아? 너땜에 좆뱅이를 쳤다고 이 년아. 그러니 더이상 나한테 너땜에 신경을 안쓰게 하도록 하는게 좋을거야. 씨발년아, 알아들어?"

그는 그녀의 귓속으로 나지막하게 말을 쑤셔넣고 있었다.

"이제부터 잠깐 우리랑 어딜 갈텐데 이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마. 숨만 쉬어. 허락받지 않고 눈이라도 깜짝 거릴때는 움직인 부위를 정확히 도려내 줄테니까."

그녀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가다니, 어디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녀의 등에서 몸을 일으키자 그녀가 몸을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던 사내가 한숨을 쉬더니 강제로 그녀의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경추 부근의 외경동맥 부위를 내리쳤다.

뇌로 향하는 혈류가 일순 막히자 그녀가 힘없이 기절했다.

티셔츠를 입은 사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미친 새끼야, 그러다 죽으면 어쩔려구."

"그럼 어떡하냐. 소리 지르는데."

그가 손으로 그녀의 목을 가리켰다.

"야 이 새끼야. 이 년 목뼈 봐라. 한 줌이나 되겠냐. 그렇게 내리치면 이거 부러져."

"걱정마, 임마. 안 죽어. 그렇게 세게 안쳤어. "

그가 손가락을 세 개 펴서 티셔츠 사내의 눈 앞으로 내밀었다.

"딱 30분이야."

"뭐가 30분이야?"

"30분 자고 일어나게끔 친 거라고. 못 믿겠으면 시간 재보던지."

"좆까고 자빠졌네."

티셔츠 사내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자신의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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