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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립스틱* - 37부

관리자 0 2669
곽춘호의 억센 팔에 안긴 이진아는 고무장갑을 낀 채 싱크대를 붙들고 어찌해야할지 고심하였다. 거실에서 울리던 전화벨 수리가 끊어졌다. 얼마든지 뿌리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만 아직은 곽춘호를 통해 알아 낼 것이 많았다. 곽춘호의 손길이 팬티 속을 더듬는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진아의 팬티 속에서 손을 빼낸 곽춘호가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이런, 제기랄........”

“누구시오?”



곽춘호가 거실로 나가서 전화를 집어 들고 큰소리를 질렀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이진아는 곽춘호가 통화하는 전화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수화기를 들었던 곽춘호가 웬일인지 굽실거리며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 몰라도 고분고분하게 대답을 했다.



“네! 곽춘호입니다.”

“.........”

“네! 곽진경을 꼭 찾으라굽쇼?”

“.........”

“이름을 개명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

“이름이 이진아라고요?”

“........”

“네, 네! 알았습니다.”

“..........”



엿듣고 있던 이진아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했다. 곽진경이 누구인지 몰라도 자신의 이름을 들먹거리는 것이다. 놈들에게 발각 된 것인가. 아니면 동명이인 인가. 혼란스러워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하여튼 당장은 다시 돌아올 곽춘호를 피하고 생각할 일이다. 이진아는 얼른 씻은 그릇들을 싱크대 안에 넣고 주방을 나왔다. 세탁물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세탁기는 현관 문 옆에 별도의 세탁실이 있었다.



세탁실로 들어간 이진아는 혼란스러운 생각에 잠겨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세탁기의 덜그렁 거리는 소리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명이인이라고 해도 왠지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세탁이 다 끝난 세탁물을 건조대에 널고 나서도 곽춘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였다.



이진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거실 안에도 곽춘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방으로 들어가니 그녀가 머무는 방문이 열려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가 휘둘러보고 나오려던 그녀가 멈칫하였다. 그녀가 항상 지니고 다니던 손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유일한 금전거래의 수단인 강민우의 신용카드가 제일 중요했다.



거실로 나온 이진아는 안방 침실 문이 벌어져 있는 것에 의문을 느꼈다. 문 앞으로 다가간 이진아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침대 위에 올라앉은 곽춘호가 그녀의 손가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끄집어내어 살펴보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이진아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아저씨!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뒤져봐요?”

“별거 없구먼. 내가 못 볼 물건이라도 있어!?”



“그래도 여자 물건을 보면 안 되죠.”

“하하~! 그런데 이진아가 누구야?”



곽춘호가 그녀의 학생증을 들고 흔들어 보였다. 자신의 신분이 들어 날것이 두려운 이진아가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곽춘호가 들고 있는 학생증을 낚아채려고 하였다. 곽춘호는 이진아의 태도가 더 이상한지 정색을 하며 학생증을 들고 있는 손을 뒤로 감췄다.



“누가 이진아라는 여자를 찾던데, 네가 이진아야?”

“아네요. 그건 친구 거예요. 주세요.”



“이상한데. 너 바른대로 말해.”

“아니라니까요. 전 애리에요. 강애리.”



그러나 곽춘호는 믿으려 하지 않고 이진아의 멱살을 잡고 방바닥에 팽개쳤다. 순간적으로 이진아는 난관에 부딪친 것을 느꼈다. 곽춘호를 처치하던지 모면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이진아는 벌떡 일어나서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젖혔다. 브래지어 차림으로 침대위로 가서 곽춘호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곽춘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웃음을 쳤다.



“아 잉! 아저씨 난 강애리란 말에요. 대학생 흉내 내느라고 친구 거 갖고 있는데 주세요.”

“그 친구가 어디 사는데?”

“서울 사는데, 지금은 몰라요. 아저씨는 날 믿으세요.”

“널 뭐로 믿어?”

“아 잉~! 아저씨는.......”



곽춘호의 시선이 브래지어를 걸친 이진아의 앞가슴을 향했다. 그리고 다리를 벌리고 앉은 이진아의 허벅지를 번갈아 보았다. 스커트가 말려 올라가 하얀 팬티가 드려다 보였다. 곽춘호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뒤로 숨겼던 이진아의 학생증을 들여다보고 건네주었다. 음험한 미소를 띤 곽춘호가 그녀를 왈칵 끌어안았다.



“어디, 그럼 믿어 볼까!”

“아, 아저씨 이러지 마세요.”



“가만있어. 믿어 본다니까.”

“아저씨......!?”



순간은 모면 했으나 이진아는 당혹스러웠다. 곽춘호의 힘에 의해 그녀는 침대위에 눕혀지고 있었다. 거칠어지는 숨을 흘리는 곽춘호가 우악스럽게 그녀의 브래지어를 풀어서 방바닥에 던졌다. 스커트가 벗겨지고 팬티바람인 그녀는 곽춘호의 가슴 아래 깔렸다. 그도 자신이 걸친 겉옷을 벗고 팬티 차림이 되어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게걸스럽게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기기 시작했다.



“아, 아저씨. 안 돼.”

“너 하나쯤 없애는 건 밥 먹기보다 쉬워. 그러니 나한테 가만히 귀여움 받는 게 좋아.”



이진아는 어차피 당할 수박에 없다고 생각하여 눈을 감았다. 놈들에게 윤간을 당하던 저주스러운 고통이 떠올랐다. 젖꼭지가 유린당하고 그녀는 의외로 짜릿한 감각을 느꼈다. 남자의 입김이 온 몸에 퍼지고 열기가 달아올랐다. 곽춘호의 손이 팬티 속으로 들어와 음모를 거머쥐는 순간 흠칫하고 놀랬다.



“아, 안 돼........”



본능적으로 내 뱉은 이진아는 곽춘호의 이글거리는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팬티가 벗겨지고 곽춘호가 하복부를 들여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소름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그의 손길이 음부를 쓰다듬었다. 자연의 섭리인가. 아니면 생리적인 반사작용인지, 그녀의 몸속에서 샘물이 흘러나왔다. 곽춘호가 묘한 웃음을 흘렸다.



“고거 제법인 걸.”



곽춘호는 그녀의 허벅지를 벌리고 무릎을 꿇더니 음부를 쓰다듬은 손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지 킁킁 거렸다. 그리고 흉물스러운 남성을 느닷없이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밀어 넣었다. 이진아는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아랫도리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없이 당한다는 심정으로 방심하고 있던 이진아는 갑작스런 충격에 상체를 들어 올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어마 얏! 아, 아저씨.”

“헉! 조, 조금만 참아. 너도 좋을 테니.”



곽춘호는 이진아의 신음소리가 쾌감으로 흘리는 것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녀의 알몸을 부둥켜안으며 흉물을 더욱 깊숙이 밀어 넣었다. 곽춘호의 주름진 피부와 진아의 연한 피부가 전면으로 밀착되었다. 충격에 눈을 부릅떴던 진아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조금씩 열기를 몸이 뜨거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굳어지고 있었다.



“헉........! 너, 참 매, 매력 있구나.”



거친 숨을 내뱉는 곽춘호는 더욱 거세게 그녀를 몰아 붙였다. 달구어졌던 뺨도 차갑게 식어가고 진아는 그저 눈을 감고 마네킹처럼 흔들렸다. 그녀는 아랫도리로 밀려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흉물을 의식하며 빳빳하게 누워 있었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패랭이 꽃잎보다도 섬세하고 나비의 더듬이보다도 민감한 부분이 느끼는 아픔, 진아는 입술사이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너, 넌 대단해........”



곽춘호가 안간힘을 쓰며 중얼거렸다. 이진아는 강민우와의 마지막 밤을 떠 올렸다. 무엇을 위해서 입술을, 그날 밤 그렇게 황홀한 순간을 견디지 못해 그 토록 입술을 깨물었던 것 일까. 너무나 대조적인 감각이었다. 곽춘호의 허리는 힘차게 상하운동을 계속했다. 그럴 때마다 정인의 목구멍 속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번져 나왔다.



이진아의 목구멍 속에 잠기는 신음은 아픔이 아니고 고통이었다. 곽춘호에게 유린당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힘겨워 지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 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리누르는 곽춘호의 어깨가 턱까지 육박해오는 것을 느끼면서 진아는 생각한다. 아아, 언제쯤 이 사람은 끝을 내는 것인가. 자신의 쾌감은 알지 못한 채로 오직 곽춘호의 희생물이 되어 몸을 내맡기는 순간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진아는 곽춘호의 어깨가 내리눌리는 무게만 느꼈다.



“헉! 미치겠다.”



헐떡거리던 곽춘호가 경직되면서 비명 같은 신음을 터트렸다. 진아는 몸속으로 스며드는 뜨거운 이질감에 몸서리를 쳤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변기처럼 남자의 배설물을 받아냈다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곽춘호는 잠시 그녀의 몸에 널브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누웠다. 이진아는 벌떡 일어나 돌아앉았다. 벗어던져진 팬티와 브래지어를 집어 들었다.



“저어........! 이 쪽 보지 마세요.”

“다 본걸 뭘 그래.”



“난 몰라요. 아저씨 때문에 큰일 났어요.”

“큰일은 뭐. 처녀도 아니면서.”



침대에서 일어난 곽춘호가 중얼거리며 반대편 침대에 걸터앉았다. 팬티를 걸쳐 입던 이진아는 허벅지로 흘러내리는 남자의 배설물을 보고 구역질을 느꼈다. 그녀는 유린당하는 것으로 순간을 모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곽춘호는 여전히 그녀를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팬티를 집어 들면서 이진아를 윽박질렀다.



“넌 아무래도 이상해. 어떻게 학생증에 사진이 네 얼굴과 똑같아? 사실대로 말해”

“.........”



이진아는 아차 싶었다. 학생증의 사진을 미쳐 생각 못 한 것이다. 몸만 빼앗겼지 얻은 소득이 없는 결과가 돼버린 것이다. 이진아는 순간적인 판단을 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언제 그들의 손아귀에 붙잡힐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애경이 돌아올 시간이 멀지 않았다.



이진아는 당장 이 집을 떠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침대 옆의 작은 탁자에 놓인 커다란 철제 모형이 이진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부릅뜨고 날갯짓을 하는 독수리형상이었다. 이진아는 고개를 돌려 곽춘호를 바라보았다. 등을 돌리고 앉은 그는 두 손으로 팬티를 들고 양다리를 집어넣으려 하고 있었다. 팬티가 발가락에 끼였는지 허둥거리고 있다. 그녀는 재빠르게 독수리 철제 형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돌아앉은 곽춘호의 뒷머리를 내리찍었다.



“죽어라! 죽어. 개 같은 놈!”

“하 악~!”



이진아는 두 번이나 곽춘호의 뒷머리를 내리찍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비명을 지른 곽춘호는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져 뒹굴었다. 방바닥에서 한 바퀴를 구른 곽춘호가 눈을 홉뜨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머리에서 붉은 피를 주르륵 흘리고 있는 그가 기어가다 시피 방구석에 놓인 진열장으로 갔다. 진열장 문을 열고 엽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진아에게 총구를 겨냥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너, 너 이년.......! 죽여 버릴 거야........”

“탕~!”



엽총에서 탄환이 발사되는 순간, 이진아는 이미 방바닥을 차고 뛰어 올라 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를 넘어가 곽춘호의 가슴을 두발로 걷어찼다. 엽총이 바닥에 뒹굴고 곽춘호는 크게 숨을 들이키며 화장대를 들이 받고 쓰러졌다. 머리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고 있는 그는 발목에 걸쳤던 팬티마저 벗겨진 발가벗은 알몸이었다. 피로 범벅이 된 곽춘호의 크게 떠진 눈동자에는 붉은 핏줄이 돋아났다. 그를 바라보는 이진아의 눈동자도 붉게 충혈 되었다. 그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독수리 형상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사정없이 곽춘호의 몸을 찍어 대기 시작했다.



“죽어! 죽으란 말이야.”



한동안 곽춘호의 알몸을 찍어대던 이진아는 잠시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다. 그녀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들고 있는 철제 형상을 집어 던진 그녀는 손가방에서 흩어져 나온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리고 립스틱을 들고 곽춘호에게 다가갔다. 곽춘호의 얼굴과 몸에 립스틱으로 하트를 그려 넣었다. 곽춘호의 몸은 붉은 피와 검은 하트가 범벅이 되어 그려졌다.



이진아는 손가방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냈다. 화장대 위에 놓인 오디오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웅장한 나부코의 오페라 합창이 흘러 나왔다. 묘한 희소를 떠 올린 그녀는 세면장으로 들어가서 손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손가방을 들고 나온 이진아는 나부코의 오페라가 흐르고 있는 집안을 휘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순간적인 일이었다. 거실 탁자위에 놓인 밀짚모자를 뒤집어쓴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현관문을 나섰다. 그녀는 마을로 향하는 대로가 아닌 왼쪽 산등성이가 보이는 좁은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목장 주변의 도베르만들이 사납게 짖어대며 날뛰었다. 바람처럼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이 산등성이를 넘어 사라졌다.



아직 나이트클럽이 문을 열기는 이른 시각, 넓은 홀 안에서는 종업원들이 한가하게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민우는 홀 안의 작은 룸에서 불곰 최중혁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온통 붉은빛의 조명등이 비치는 룸의 바닥마저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실내임에도 멋으로 도수 없는 갈색 안경을 끼고 있는 최중혁이 탁자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염려 마십시오. 형님! 들개가 단단히 지키고 있으니.”

“그런데도 별 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네. 얼마 전에 몇 놈이 왔다간 후에 변동사항이 없습니다.”

“연락하지 그랬어?”

“왔다가 얼마 안 있고 가기에 미처 말씀 못 드렸습니다.”



최중혁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룸의 문이 열리고 허벅지가 들어나는 원피스를 걸친 여종업원이 음료수와 유리잔을 들고 들어왔다. 나이가 앳되어 보이는 여종업원이 탁자위에 음료수를 내려놓고 강민우를 힐끔 쳐다보며 음료수를 따랐다. 여종업원이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강민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강민우의 무릎위에 앉으며 애교를 부렸다.



“오빠! 잘생겼네. 음료수 말고 맥주 좀 사줄래요?”

“대낮부터 무슨 맥주!?”



여종업원이 강민우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매달렸다. 강민우가 여종업원을 피해 상체를 뒤로 젖혔다. 바라보고 있던 최중혁이 안경너머로 강민우의 눈치를 살피며 한마디 내뱉는다.



“은영아! 그분은 오빠가 아니고 어르신이니 함부로 까불지 마라.”

“이렇게 젊은 분이 무슨 어르신! 오빠지.”



“허 엇! 까불지 말래도.”

“사장님 질투하나보다. 호호~!”



그녀는 의도적으로 강민우의 허벅지 사이를 엉덩이로 깔고 앉아 허리를 흔들었다. 최중혁이 모른 척 외면을 하고 안경을 벗어서 소매 끝으로 문지른다. 강민우가 엷은 미소를 띠며 그녀의 허리를 안아서 옆자리에 앉혔다. 그녀가 강민우의 볼에 입맞춤을 하며 눈을 흘겼다.



“오빠! 되게 비싸게 구네. 흥~!”



콧방귀를 흘린 그녀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다시 다른 여종업원이 무선전화기를 들고 들어왔다. 최중혁이 다기 안경을 고쳐 쓰며 입구를 바라본다.



“사장님! 전화 왔는데요. 들개 오빠요.”



공연히 거들먹거리는 최중혁이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두 여종업원이 시선을 마주하고 그들만이 아는 표정으로 눈짓을 하더니 룸을 나갔다. 천천히 자세를 잡은 최중혁이 담배 한가치를 뽑아 입에 물며 전화기를 귀에 대고 거드름을 폈다.



“아! 그래. 왜, 전화 했어?”

“지금 목장에서 엽총소리가 났는데, 이상해요.”

“엽총 소리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던 최중혁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입에 물었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껐다. 전화기 속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들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우선 급해서 마을에 내려와 전화하는데요.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나더라고요. 그리고 밀짚모자를 쓴 여자가 뛰어 나와서 사라졌어요. 형님! 오실 거죠?”

“비명소리! 여자가.......! 기다려. 갈게.”



전화기를 손에 움켜쥔 최중혁은 큰일을 치룬 사람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강민우에게 말했다.



“목장에 무슨 일이 터졌나 봅니다. 총소리와 비명 소리가 났다는데요.”

“나도 듣고 있었어.”



소파에서 일어난 강민우는 룸 문을 열고 나섰다. 최중혁도 뒤따라 나왔다. 붉은 카펫이 깔린 통로를 걸어가던 강민우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자넨 여기 있고. 자네 차 열쇠하고 그 전화기 좀 줘봐.”

“넵.”



최중혁이 허리를 굽실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무선 전화기를 강민우에게 건넸다. 강민우는 전남 도경의 수사과 전화번호를 누르며 걸어갔다. 그의 뒤를 따라오는 최중혁은 강민우가 어디에 전화를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조경정을 바꿔달라고 하면서 카운터에 당도한 강민우가 마약밀수에 관련된 사건일 것이라면서 용두목장 위치를 전화 상대에게 가르쳐주었다. 강민우가 던지는 무선전화기를 받아든 최중혁은 강민우가 말한 마약밀수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출입문을 열고 나간 강민우가 층계를 뛰어 올라가는 구둣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갔다.



평일이지만 청암산을 오르던 등산객들은 별안간 먼지를 일으키며 경찰차와 버스가 올라가고 있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봤다. 뒤이어 승용차 한 대가 청암산 중턱을 향해 쏜살같이 올라갔다. 경찰자와 버스, 그리고 승용차가 용두목장 입구의 철제 문 앞에 급정거하였다. 버스에서 내린 경찰이 목장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철제문을 열어 젖혔다. 목장을 지키고 있던 도베르만들이 귀가 찢어지도록 짖어댔다. 대기하고 있던 차량들이 철제문 안으로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린 경찰수사관과 사복형사들이 목장 내부를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경찰차에서는 조 경정과 임 경위, 그리고 승용차에서는 강민우가 내려섰다. 목장 주변에서는 특이한 점을 발견 할 수 없었고, 주택에는 사람의 흔적조차 찾을 수없이 조용했다. 주택 안으로 들어간 조 경정은 피비린내에 눈살을 찌푸렸다. 거실로부터 핏자국이 이어진 안방은 그야말로 선혈이 낭자한 지옥 같았다. 벽과 침대, 그리고 방바닥에는 붉은 물감을 풀어서 빗질한 것 같았다.



부서진 화장대와 진열장 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쓸어져 있었다. 발가벗은 남자는 남자의 성기를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다. 남자의 머리에서는 아직도 시커먼 피가 흘러나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장갑을 낀 수사관 한 명이 남자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쭈그렸다. 가슴에 손을 넣어보고, 코에 귀를 대보기도 하면서 확인을 하더니 조 경정을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망 했습니다.”



이미 숨이 끊어진 남자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남자의 시신 옆에는 엽총이 나뒹굴어 있다. 뒤따라 들어온 강민우가 쓸어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남자의 머리를 구둣발로 밀어 얼굴을 확인했다. 강민우는 사망한 남자가 곽춘호임을 알 수 있었다. 조 경정이 임 경위를 불렀다.



“어딘가, 물건이 있을 거야. 집안을 수색해 봐.”



머리를 꾸벅하고 나간 임 경위가 형사들과 경찰수사관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했다. 수사관과 형사들이 흩어져 집안을 꼼꼼하게 수색하기 시작했다. 수사관들은 주방과 방, 세탁실, 창고 등을 돌아다녔다. 작은 상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쏟아내고, 심지어는 주방 기구들도 하나씩 들어내며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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