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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시트콤 - 1부 1장

관리자 0 2299
이 글은 PC방에서 우아하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제외한, 정말 우거지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짧게는 1부 조금 길면 2부 형식의 단편으로 묶어 연재하려고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나 길게 갈런지는 모르지만 하하이세님이 옆구리를 쿡쿡 찔러 주면 재미있는 글이 될 것이고 안그러면 정말...초딩의 글짓기가 될 것 같군요. PC방에서 첨부터 헥헥 거릴수는 없으니 처음 도입부분은 단단 밋밋할 것입니다.







제 1 부 : 동상이몽



돈 한푼 안들이고도 이렇게 추운날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은 제일 막내인 철호를 따라 PC방엘 가면서 부터였다. 예전에는 일찌감치 남의 집 굴뚝을 차지했다면 몰라도 미처 적당한 잠자리도 마련하지못한 상태에서 찬바람이라도 만났다 싶으면 서로 등짝을 바람막이 삼아 머리를 맞대고 얼어터진 손가락을 입으로나마 후후 불어 얼어죽는 것 만큼은 이겨내야 하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정말 겨울은 죽을 맛이었다.



"철호야, 지하철로 내려갈까?"

"행님요. 맨날 역무원한테 쫒겨 다니는거 지겹지 않수? 차라리 날 따라 오시우."

"어델?"

"근데 돈은 쬐끔 있어야 하는데, 있수?"

"없다 아이가."

"그럼 오늘은 내가 낼테니까 낼부턴 행님이 동냥 좀 하소."

"죽어도 내 동냥은 못한다."

"할 수 없지 뭐. 오늘은 맛만 뵈줄테니까 행님이 알아서 하슈."

"뭔데?"

"온종일 따뜻한게 죽여주는 PC방 갑시더."

"우리같은 사람이 가두 돼나?"

"돈 내면 암말 안한다 아이가."

"비싸잖냐."

"한 시간에 오백원 밖에 안하는 PC방두 줄창 있은께."

"겨우 오백원?"

"지하철 입구에서 눈 딱 감구 십분만 개기면 종일 따닷하게 보낼 수 있다니까예."

"거시, 머냐. 그렇게 좋다고 침만 바르지 말구 함 가보자."



철호를 따라 큰 길가를 건너 구불구불 동네 어귀로부터 한참 들어간 허름한 PC방엘 들어갔다. 카운터를 보는 직원은 손님이 왔는데도 눈길 한번 안준 채 컴퓨터 화면만 졸라 들여다 보고 있다. 따닥따닥 붙은 책상 위에는 담배에 찌들대로 찌든 상자가 올려져 있고 그 앞면엔 유리창 같은 것이 있는데 울긋불긋한 것이 마구 날라다니고 뛰어 다니고 칼질하는 것이 마치 텔레비전이나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철호야, 저게 뭐냐?"

"행님요. 저걸 몰라예?"

"텔레비젼 같지는 않구."

"아무리 이렇게 살지만서두 너무 모르네. 저게 모니터라는 거유."

"뭐하는건데?"

"컴퓨터는 아슈?"

"쟈슥이, 얌마, 컴퓨터 모르는 사람이 어딨냐?"

"컴퓨터는 알면서 모니터를 모른다구요?"

"근데, 컴퓨터는 어딨냐?"

철호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책상 왼쪽에 놓여진 검은 상자를 가리키며 컴퓨터라고 알려준다.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적어도 내가 이 생활을 시작한지 꽤 오래된 것은 사실이지만 한 때는 컴퓨터로 밥을 먹던 사람이라는 것을 철호는 모를 것이다. 이층 정도의 큰 공간에 신호를 해석하는 진공관이 번쩍번쩍 빛을 발할 때의 장엄한 광경을 수 없이 봐왔었다. 자료를 입력하기 위해 코딩지에 빽빽하게 글짜를 써 넣고 여직원에게 넘기면 쉴새없이 카드가 쏟아져 나왔었다. 그 카드가 섞이기라도 하면 몇 날을 작업한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에 펀치를 쳐대는 여직원 보다 내 눈과 신경이 온통 날라다니는 카드에 쏠렸었다. 컴퓨터를 조금 옮기려면 직원들 몇 명이 모여 헥헥거리며 땅바닥에 질질 끌리는 동 케이블을 어깨에 맨체 이리저리 옮겨다니곤 했었다. 몇날인지 몇 달인지 기억나지 않는 시간 속에 컴퓨터에 혼을 심어 넣기 위한 작업을 마무리 하면 펀치로 쳐댄 카드를 읽히고 이것을 릴테이프에 옮겨 담아 언제라도 컴퓨터를 작동시킬 만반의 준비를 하곤 했었다.





“아무래두 행님이 딴 나라 사람이던지 정신이 휙가닥 한 모양이네.”

철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궁시렁하며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설마, 행님이 이 바닥에 오래 있던 터주대감이라구 해두 신문도 안봤어요?”

“뭔 신문?”

“거 머냐. 펜티엄이다 뭐다 액정이 어쩌구 저쩌구 맨날 신문에 도배하더만.”

“쟈슥아, 알지. 다 알지. 그치만 실물은 첨이라서 그런다.”

“그럼 키보드도 모르겠네?”

“마우스도 들어는 봤다. 근데 본 것은 첨이라니까.”

“알았수. 일단 행님은 내가 하는 걸 보고 눈 짐작은 하시것죠?”

“얌마, 눈칫밥 오십년이다. 니 하는거 어깨너머무 슬쩍 봐두 눈살하난 끝내주잖냐.”

“내 하는걸 보구 자신있으면 자리하나 꿰차슈.”



철호가 컴퓨터 전원을 넣자 모니터라는 네모상자에 그림이 그려지더니 회색바탕에 그림이 몇가지 올라왔다.

“이게 윈도우라는 거유. 왜 창문있잖아요. 그거 말구, 컴퓨터 윈도우라는게 이거유.”

“쟈슥. 말 많네. 계속해봐. 내 다 보고 있응께.”

“내두 할지 아는게 없슈. 그냥 채팅이란게 유행인데 함 보실라우?”

“채팅? 그려 해봐.”



철호가 모니터에 나타난 그림 하나를 마우스라는 것으로 쿡 누르니 조그만 창이 또 나타났다. 아이디랑 비밀번호를 넣고 몇 번을 마우스로 쿡쿡 누르니 채팅 대기화면이 주루루 열리고 그 중 야한 제목을 골라 또 마우스를 누르니 별 쏟아지듯 글짜가 우르르 떨어지는 하얀 창이 나타났다.



“행님. 요게 잼있다우. 거 머시냐. 전화있잖우. 그거랑 똑 같다니까.”

“글짜랑 목소리랑 똑같냐?”

“훨씬 재밌수. 모르는 애들이랑 막 떠들어대면 혼이 다 빠진다니까예.”

“실없는 놈. 모르는 놈이랑 왜 떠들어대냐?”

“일없잖수. 그냥 시간만 죽치면 되는 인생아뉴?”



사실 그랬다. 살기위해 바둥거리며 분주하게 사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인생을 낭비하는 우리들이 너무 한심하게 보일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을 돌이켜 보면 순간 순간을 바둥거리며 살았을 때만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먼 발치에 조용히 내려 앉을 어둠처럼 어차피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죽음이라는 종착역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오형제라도 된 양 사사건건 이일 저일을 간섭하며 사는 인생이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조용히 인생을 즐기는 우리들이나 삶의 가치는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내가 PC방에서 경이로운 컴퓨터를 보게 되기 전까지만해도 살아야할 의지와 죽어야할 숙명사이에는 아무런 차이점도 있을 수 없었다.



“흠, 놀랍군. 컴퓨터가 이렇게 작아질 수 있었다니.”

“행님요, 컴퓨터가 언젠 컸어예?”

“놀라워. 마치 코끼리가 생쥐처럼 작아진 것과 같은 충격이야.”

“그동안 어디서 뭐하셨는데예?”

“나?”

“그래예. 행님이 횡설수설하니 내 정신도 얼빵해지네예. 이렇꺼면 괜히 델구왔네예.”

“아냐, 아냐. 잘 왔어. 말 조심할게.”



철호는 채팅창을 통해 사람들과 우아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 뒤에 서서 어깨너머로 키보드를 통해 글짜기 입력되는 원리와 마우스로 쿡쿡 누르는 시늉에 혀를 차며 순간적으로 모니터에 나타나는 이벤트를 보며 심장이 마구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이거였어. 내가 꿈꾸던 컴퓨터는 지겹도록 펀치를 쳐대고 발뿌리 부딪혀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사방으로 흩뿌려진 카드를 줏으려고 맨날 허둥대는 대신 자판만 쿡쿡 누르면 컴퓨터가 금방 입력되서 데이터를 처리해주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었어. 그런데 저 쥐새끼처럼 생긴 마우스라는 놈은 뭐하는걸까?”



“행님이 키보드 만드는게 꿈이었다구예?”

“응, 니가 치구 있는거 있잖아, 그걸 만들어 볼라구 몇 년을 고생했었던 기억이 난다.”

“행님은 뭐하던 사람인데예?”

“나? 잘 모르겠어. 어렴풋이 컴퓨터를 다뤘던 것 같아.”

“그럼, 행님은 지금 기억 상실증에 걸린거유?”

“아냐, 아냐. 난 멀쩡해. 근데 가끔 내가 컴퓨터랑 뭔 일을 했던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상실이네. 어쩐지 얼빵해 보인다 싶다가두 아니다 싶더라.”

“몰라. 그냥 나랑 연관이 있는 것 같기두 하구, 꿈이던가?”

“후딱 꿈 깨구 저기 빈자리에 행님두 앉아 채팅이나 하시우.”

“난 돈 없는데...”

“아따, 그냥 내가 있으니까 맘 놓고 자리나 꿰 차구 앉으시우.”



철호가 귀신씨나락 까먹는 엉뚱한 감상에 젖어 있는 나를 귀찮아 하고 있구나 싶어 적당한 빈자리를 골라 앉았다. 조금 전 철호가 하던 대로 검은색 컴퓨터 앞에 있는 둥근 스위치를 누르니 전원이 들어오고 삑소리와 함께 드르륵 소리가 들리더니 모니터라는 화면에 그림이 신기하게 나타났다. 배전반을 열어 마스터 스위치를 올리고 전압안정장치인 AVR과 비상전원장치인 UPS가 정상작동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컴퓨터 메인스위치를 넣지도 못하고 긴장된 순간의 조바심으로 몇몇 사람들의 환호성이 귓가에 들리기 전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다가왔다.



“정말 철호 말대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던건가?”



모니터 화면에 검은색 바탕이 깔리면서 한참을 드르륵 거리더니 회색빛 화면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눈이 부시도록 섬세한 그래픽이 맘에 들었다. 언젠가 강력한 힘을 가진 애플이라는 8비트 컴퓨터가 출시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키 펀치 대신 키보드라는 장치를 갖추고 책상 위에도 올려 놓을 수 있다는 소리에 도대체 그 책상이 얼마나 크길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과 같은 농담을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내가 말로만 듣던 키보드를 쿡쿡 누르자 삑삑 소리만 날 뿐 아무런 반응도 없다.



“야, 철호야, 이거 엉터리다. 아무 것도 안돼.” 건너편 자리에 앉아 열심히 뭔가를 쳐대는 철호를 향해 큰 소리로 떠들 듯 말하자 카운터를 지키던 남자가 뛰어왔다.



“뭐가 안되죠?”

“몰라. 키보드를 눌렀는데 삑삑 소리만 나구 아무것도 안되잖아.”

“아저씨, 뭘 할것데요?”

“모르지. 이게 키펀치 대신 쓰는거라며. 그런데 아무리 눌러도 아무것도 안되잖아.”

“애이,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눌러야지요.”

“프로그램? 뭐가 있는데?”

“뭘 하실라구요?”

“쟤 하는거. 저거 뭐지?”

“아하, 채팅요?”

“그래. 채팅. 그거 하려구.”



남자가 마우스를 쓱쓱 움직이다가 뭔가를 쿡 누르니 모니터 화면 가득 글짜가 떠 올랐다.

“아이디 있어요?”

“없어.”

“그럼, 여기 회원가입란을 누르면 화면이 뜨거든요. 거기다 키보드로 입력하면 되요.”

“그래? 복잡하구먼.”

“컴퓨터 첨 하세요?”

“아냐, 오래됐어. 이딴건 첨이지만.”

“뭘 했는데요?”

“코딩하구 키펀치 치구 입력하구 테프로 받구 로딩하구 별거 별거 다 해봤지.”

“아저씨, 이건 그딴거 몰라요. 그냥 하고 싶은걸 마우스로 쿡 누르고요. 거기서 요구하는데로 키보드로 입력하면 다 되는거에요.”

“알았어. 혼자 해보고 안돼면 또 부를게.”

“아이씨, 정말 무식한 아저씨가 와서 괜한 시간만 뺐겼네.”



그 남자가 등을 돌린 채 툴툴거리며 카운터로 향하자 나는 용기를 내어 화면에서 반짝반짝 거리며 유혹하는 커서 위에 회원등록을 위한 데이터를 입력했다.



“행님, 정말 모르는거유?”

“아따, 모른다. 이건 첨이라니까.”

“삼척동자도 다 아는게 인터넷이구 컴퓨턴데 행님은 어디갔다 왔수?”

“야야, 하던 가닥이 있으니까 빨리 배울꺼다. 그나저나 이거 다 했는데 그다음엔 어떻게 하냐?”



철호는 회원등록을 마치고 망연자실해 있는 나를 위해 마우스로 쓱쓱 옮겨다니며 드디어 채팅창을 열었다.



“행님요, 키보드는 엄청 빨리 치네.”

“얌마, 텔렉스도 쳐 봤다. 이게 뭔지 몰라서 그렇지 알기만 하면 식은죽 먹기 아이가.”

“됐네요. 암튼 요기 밑에 있는 칸에다 행님이 하구 싶은 말 있으면 적당히 쳐 넣으슈.”



철호가 자리로 돌아간 후 화면을 보니 수많은 글짜들이 빈 화면에 남김없이 가득차 있었다.



“방가, 방가.”

“나두 반가워.”

“머하는.”

“키보드 치는.”

“그거 말구 직업이.”

“백수.”

“돈 많아?”

“없어.”

“돈 없다며 웬 백수?”

“넌?”

“공주.”

“예쁘냐?”

“엄청.”

“난 백수, 넌 공주라.”

“쓸데 없으면 나 돈 주라.”

“아무나?”

“함 볼까?”

“봐서 뭘?”

“공주한테 한턱 쏴봐.”

“밤도 늦었는데?”

“어때? 백수라며.”

“넌 어떻게 생겼니?”

“아랑드롱. 넌?”

“난 재니퍼.”

“인물 좋네. 근데 너 나 알아?”

“그러니까 함 보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몸이 달아 상판데기도 모르는 남자한테 한번 보자는 얘기를 여자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야, 철호야. 왕건이 건진 것 같다.”

“행님, 왕건이?”

“응. 이거 정말 신기하네. 지가 공주라는데 함 보잔다.”

“어디, 어디.” 철호의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지면서 화면을 위 아래로 주욱 흟어본다.

“마수걸이에 딱 걸렸구먼. 이 여잔 오늘 잠자리를 찾는거잖아.”

“공주라는데?”

“행님요, 이런데서 지껄인 소릴 믿으면 안되죠.”

“그럼, 이 여잔 뭔데?”

“암만 봐두 행님이나 이 여자나 신세가 비슷하구먼.”

“뭐? 이 여자두 노숙자?”

“아이구, 행님아. 딱 보니 척이구먼.”

“야, 얼굴이 재니퍼라는데?”

“봤수? 행님이 이 여자 봤냐구요.”

“못봤지.”

“뻥치구 있잖아. 그리구 행님 몰골이 뭐 아랑드롱?”

“내가 뭐 어째서.”

“아무튼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 말구 딴 년이랑 연결해봐요.”



철호는 열린 채팅창을 마우스로 쿡 눌러 닫아 버리곤 다른 채팅창을 열어준다.



“행님요, 먼저 꼬리치는 년은 뻔하니까 우아하게 대화하는 연습을 좀 하시우.”

“그런 너는 뭐 좀 건졌냐?”

“당근이쥐. 행님 내 자리루 와 보소.”



나는 철호가 이끄는데로 철호의 모니터에 주루룩 떨어지는 글짜패를 읽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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