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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 - 27부

관리자 0 3094
-바람소리-



제 27 부 : 몰려오는 먹구름



‘자, 어서 차에 올라 타쥐?’



현석이 빠져 나간 자리를 메운 탱크까지 합해서, 7명이 SUV에 올라 타니, 차 안은 가득했다.



‘삼슈야, 집을 저렇게 놔 둬도 되니?’



희진이 집을 나서며, 물었다.



‘괜찮수, 누님, 집안이야 뒤져 봐야, 아무 것두 없으니까.’



‘아니, 아무것두 없다니? 지하실을 뒤졌다간 천지가 개벽할 만한 물건 천지든데…..’



그 희진의 걱정에 일슈가 대답했다.



‘누님 걱정두 팔짜유. 우리가 방금전까지 있던 지하실은 그 집의 건물 지적도에도 나타나질 않은 시설이우. 우리가 지낼 때야, 우리가 머무는 곳으로 입구가 나게 되지만, 우리가 이렇게 집을 나설 때는 그 복도의 낭하가 다른 감춰진 문으로 연결되게끔 바뀌는 거 모르셨져? 복덕방 사람들이 기억하는 지하실의 모습 그대로….누님, 예전에 그 유명하다는 그 추리소설 얘기 아시져? 잠자고 일어나니 어제까지 창문 앞에 있던 집이 눈 앞에서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그 얘기…..그게 진짜 집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그 자신이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걸 알기까지, 그 사람은 진짜 눈 앞의 사물이 사라졌다고 믿는다는 말…..우리 지하실이 그렇거덩여. 우리의 비밀 단추로 열리기 전까지는 그냥 지하 복도의 벽일 뿐이지만, 우리가 집에 있을때는 그 복도의 지하실이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면서 열리는 거져. 누님 모르셔서 그렇지, 우리가 있는 지하실, 실은 옆집의 정원 밑으로까지 이어져 있어여. 그러니, 지금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집 안에 들어갔어도, 지하실은 잡동사니가 가득찬 평범한 지하실을 보고 있는 거져.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다른 공간을 보질 못하면서…..영화에서처럼 벽을 뚜드려 보고 건너편에 뭐가 있다고 밝혀낼 수 있질 않느냐구여? 웃기셔! 우리가 있는 지하실은 옹벽으로 딴딴하게 벙커처럼 되어 있구, 전자파가 차폐되어 있어서 안에서 무슨 작업을 하든 밖으로 신호가 방출되덜 않아여. 똑똑 뚜드려 보다가니, 건너편에 무언가 있다?다 그거야 영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얘기져. 누가 때돈 들여 시설 맹글면서, 기초를 그다지 허술하게 한답디까? 다 개소리지.’



‘일슈야, 왠 말이 그렇게 많아? 어여 더듬이 쫌 올려 봐라.’



‘형, 근데 어디루 갈거유?’



‘이슈야, 오랜만에 부산 왕복이나 하고 오자. 근데 쟈들 뭘로 보이냐? 아무래도 저렇게 쳐 올라가는 폼새가 우리집 털러 가는 거 같은데…..’



‘셩, 쟈들 차 번호 쫌 따 볼까?’



‘그래라, 그럼…..암만해두 냄새가 나네.’



집을 빠져 나오기 무섭게 검은 차량이 서너대가 달겨 들어오는 모양을 본 삼슈가 가만 있을 턱이 없었다.



‘거럼 그렇지, 쟈들 국정원 아그들 인뎅…근데 뭔일로 국정원이 나서고 난리?’



‘……..탱크야! 너 요즘 이상한 낌새 눈치챈 거 없냐?’



‘이상한 낌새라믄, 뭐 꼬리 붙어 다니냐 이 말 아입네까? 기거이 있을 수 없디 안카씁네까? 미행이라 하믄 내레 뎐문인데, 눈치 못깔리 업디 안캈냐 이 말 이디요.’



‘삼슈, 쫌 이상하긴 하네, 현석이란 사람이 튀어 나간 것도 그렇고, 검찰이 아니라, 국정원에서 먼저 뛰어 들어오는 것도 그렇고…..암만해도 저 탱크라는 사람….믿을 수가 없는 거….아닌가? 간첩 잡는 사람들이 이 일에 관련되어서 우리를 쫓고 있다? 이건 말이 안되는 거 아닌가?’



‘흠…..이슈야, 얼릉 고속도로 타라. 그리고, 차광막 쫌 넣고…..’



그러자, 차의 창은 금새 까매지면서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되었다. 모든 창문이 안에서는 훤히 잘 보여도 밖에서는 빛이 굴절되고 반사되어서, 안이 절대로 보이질 않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었다.



‘일슈야! 이 차안에 전자파 차폐밀도가 어떻게 되지?’



‘그거야, 물샐틈 없져. 아무리 이렇게 바깥이 보여도, 이슈형의 자동차는 이 차안에서 제 장비가 작동되지 않고는 핸폰도 안터져여, 모든 가전기기, 혹은 미세한 도청 주파수도, 설사 이 안에 장치되어 있다고 해도, 밖으로 전파를 쏠 수 없져. 이 차는 이른바, 움직이는 벙커라니깐여! 아까 국정원 아그들 보셨잖아여? 만일에 갸들이 몰고 다니는 특장차에서 우리 중에 누군가 추적신호를 흘리고 있던 걸 잡았다면, 우리 집으로 훑쳐 올라갈 게 아니라, 우리 차를 쫓았어야져……그러고 보니 쫌 이상허네…..갸들 장비도 만만찮은데….’



‘이제 알겠냐?’



‘뭐여?’



‘탱크, 너 옷 벗고 이 뒤로 와봐.’



‘와, 옷은 벗으라 함네까?’



‘일슈야, 탐측장비 쫌 켜 봐라. 그리구, 탱크, 너, 남파공작 명령 하달 되었을 때, 예방주사 같은 거 맞은대로 다 불어 봐. 어디 특이한 곳에 맞은 거 없었냐?’



‘가만 있어 보시라요. 그러니끼니, 디쁘테리야, 코레라, 장티뿌수, 페수뚜 뭐 이런거이 팔뚝에다 놓고서리, 아! 한가디는 등에다 놨시요. 기거이 저체온 방지제였디요.’



‘저체온 방지제?’



‘공작중에 물에 들어가서리 한나절이고, 수삼일이고 간에, 저체온쯩으로 골로 가딜 안토록, 적정 체온을 유디시켜 주는 거라 하드만요.’



‘그래? 어디 쯤인데?’



‘고기쯤 입네다.’



탱크는 등과 목뿌리가 이어지는 야들야들한 살쪽을 가리켰다.



‘이 쪽을 뒤져 봐라.’



조그만 숟가락처럼 생긴 손잡이를 탱크가 가리킨 위치로 가져가자, 대번에 장비에서 신호가 왔다.



‘형, 뭐가 있는데? 이거 근육 밑에 심어져 있는데, 어떡허까?’



‘강선생, 쫌 나서줘야 하겠는데, 요 부위의 피하 1.5센티 되는 부근에 있는 물건을 쫌 꺼내 줘야 하겠는데….’



‘아니, 메스도 없고, 아무런 도구도 없이….’



‘기거이 걱정 마시라요. 이거이 있디 안슴네까?’



하면서, 탱크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휴대용 반짇고리 세트였다.



‘사내 자식이 이런 건 뭐허러 갖고 댕겨?’



‘삼슈형이야, 일슈형이래 다 알아서리 챙겨두디만, 나야 뭐 그렇슴네까?’



‘알았다. 뭐 되도 않는 도구지만, 없으니 어쩌겠수? 한번 해 봐 주실라우?’



민기는 어쩔 수 없이, 그 세트에서 면도칼을 꺼냈다. 마땅한 소독액도 없어서 라이타 불에 칼끝을 달군 뒤에 지적한 부위로 면도칼을 가져갔다.



‘아파도 좀 참게나.’



‘기거이 제 뎐문 이디요.’



생각보다 면도날은 날카로왔으며, 살의 깊이로 보아 1.5 센티라면 그렇게 얕은 깊이도 아니었기에 면도날은 생각보다 길게 자국을 남기며, 살 속으로 박혀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민기였다.



‘뭔가 칼끝에 걸리는 거 같은데, 그 바늘 쫌 집어 주겠소? 그리고, 라이타 불로 끝을 쫌 달궈 주고…..얼릉!’



민기에게 건네진 바늘을 그 절개한 상처 속으로 집어넣자, 치지직하면서, 열기가 식는 소리마저 나고 있었지만, 탱크는 미동도 하고 있질 않았다.



‘됐네……근데 이게 뭐야? 안테나 뿌러진 끝처럼 생겼는데…..’



‘일슈야, 한번 살펴 봐라. 그게 뭔지…..’



‘참….형 이거 뭔지 아우? 요즈음 외국에서 인기있는 거유. 돈없는 북한 아쟈씨들, 비싼돈 주고설랑 개발할 여지는 없고, 또 외화벌이 하시는 어떤 쌉쉐이가 이런게 어떠냐고, 또 설레발 치면서 북쪽에 사들여 보냈겠구만.’



‘뭔데?’



‘이게 요즘 외국에서 유행허는 개목걸이 아니우, 개목걸이….’



‘개 목걸이?’



‘개들이 시간만 나면, 지 목에 매달린 지 주소랑, 이름 적힌 팬던트 물어뜯는게 일이거덩여. 그러다 보니, 불시에 개새끼 잃어먹고 나면 무슨 수로 찾겠수? 그러니, 개의 목 뒤에 이런 칩을 주사기로 떡 하니 심어 놓는 다고 하데여. 어떤 치들은 그게 666 인침의 시범테스트라고도 허고, 인간에게도 저렇게 허지 말란 법, 없다면서 반대도 했다는데, 그렇게 살 속에 심어 놓고 나면, 어떤 상황이 와도, 디텍터로 찾는데, 손쉽다는 거 아니우. 어떤 치들은 위성으로 찾을 수 있도록 집값에 버금가는 초고가품을 지 개새끼한테 선물하는 정신나간 인간들도 있다 허대여. 아니, 그렇다고 목숨걸고 휴전선 넘는 사람한테, 개목걸이는 쫌 그렇지 않우?’



‘그거이 그 목적만 있는 거이 아니라고 들었습네다.’



‘그럼?’



‘어떤 침투조 에게는 체내에서 여차딕 하면 터져서리 체외로 순식간에 번져 주위를 감염시키는 독극물 캅슈르, 어떤 침투조에게는 비밀 녹음 칩…종류별로 무언가 다른 거이 들어간다는 말을 들은 뎍이 있디요. 남조선에서 공작수행중에 사살된다고 하더락두, 알려디딜 않은 비밀 공작원의 시신은 인도주의 정책에, 의해서리 당연히 북으로 비밀리에 올려 보내 지게 되디요. 그리고 나서리, 그 시체속에서 영웅적인 공작수행의 마지막 결과를 당이 최종뎍으로 접수하는 거이디 뭐갔슴네까? 거 의사 양반, 이뿌게 꼬매 주시라요.’



민기는 절개한 부분을 맨실로 꿰고 있는대도 농담을 흘리는 탱크가 이해되질 않고 있었다.



‘이제사 이해가 가긴 허는데, 어째서 국정원 아그들이 덤볐지? 그럼, 상록수 쇄끼들이 우리 주변에서 우리 쪽으로 콜을 받아 들어갈 인물들을 찾고 있었다는 야근데…..’



‘그럼, 아직까지 안전가옥을 상록수 자슥들은 모른다는 야그 아뇨?’



‘그렇지, 그런데, 엉뚱하게 탱크가 불려 들어가는 걸 보고, 추적을 할 수 있는 건덕지가 없나 살펴보다가, 국정원 자슥들에게 탱크의 비밀을 불어대서는 따라 붙게 한 거지. 그리고, 문제가 더 복잡하게 얽히기 전에 사모님이 갖고온 그 I-POD를 나꿔채서는 튀도록 그 팀장에게 지시한거구. 약은 쇄끼들…..’



‘그래서 차에 올라탄 탱크를 쫓질 못한 거구만.’



‘거 삼슈씨는 쌈도 잘하면서 어떻게 머리도 그다지 좋아여?’



윤서가 삼슈의 추리에 감탄하며, 물었다.



‘이게 다 누님을 위한 거지, 뭐겠수?’



그 말에 모두 입을 다물고야 말았다.



‘형, 근데 뜬금없이 부산 왕복은 왜여?’



‘우리도 다음 행동으로 옮기기 전까지, 이렇게 차안에 모여서 작전회의를 허자 이거지. 이제까지 너무 정신없이 휩쓸려 다녔지 않니?’



‘오예, 형, 그럼 도중에 뭐부텀 들쳐 볼까나?’



‘우선, 검찰 쪽 얘기부텀 들어보자, 갸들도 우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꺼구, 만일에 그 팀장이라는 작자가 상록수 편이라면, 게임이 끝났다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 터이니, 검찰의 쪼여대는 포승이 시간을 두고 느슨해 질 것은 뻔하질 않겠니? 검찰의 분위기를 파악해 보면, 그 팀장이라는 작자가 어느 편의 위치에 서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을게다. 만일 검찰에서 도망친 우리의 종적에 아직도 혈안이 되어 있다면, 그 자는 그 물건을 가지고, 상록수와 검찰, 황성을 상대로 거래를 하려는 게 분명허지. 어차피 돈쌈인데, 지 눔이 어딜 가겠냐? 우리의 행방 보담야, 그 팀장이라는 작자에게 눈을 돌릴 상록수 일텐데, 우리를 쫓는 것에 열불을 올리며, 검찰을 찔러댈 인간들이 아니거덩…’



‘그럼, 그 팀장이라는 자슥이 독고다이란 거유?’



‘첨부터야 그랬겠냐? 사모님의 하시는 일에 더듬이를 세우고 있다가니, 상록수든, 황성이든 간에 의심 사덜 말고 따라 붙으라는 지시가 내렸을게다. 그러다, 전혀 쌩뚱맞게도, 우리를 잡으려고 개입시킨 국정원과 문제가 확산될까봐, 그 팀장을 피신 시킨 걸 꺼고, 마침 손에 넣은 I-POD로 멋진 마무리를 허려고 했겠지. 그 와중에 그 팀장은 맘이 바뀐거고……이 와중에 한몫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을꺼다. 그래서 뒷간 갈때랑 나올 때 맘이 다르다고 옛말에 그랬잖니?’



차 안에 모인 사람은 두 귀를 쫑긋하면서, 이리저리 검찰의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뒤져대는 일슈의 눈부신 솜씨를 듣고, 보고 있었다. 그 안에서 들리는 전화, 무전기등, 통신장비 혹은 검찰의 내부에 시시때때로 짱박아 놓는다는 감청 장비로 작금의 상황을 훑어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근데, 일슈, 시시때때로 짱박아 놓는다는 말은 뭐여?’



민기가 의아해서 참다, 참다가 일슈에게 질문했다.



‘지네들이라구 별 수 있겠어여? 떼돈 들여가며, 사설 전문업체 불러다가니, 대청소 허듯이, 방이며, 회의실 뒤져서 도청 장비 찾아내니, 또 달고, 또 대청소, 또 달고, 또 대청소…..컴퓨터 바이러스랑 똑 같아여. 누가 바이러스 변형 시켜서 퍼뜨리면, 백신 뿌려대고, 면역 생긴 쉐이들이 또 뿌려대면, 맞대응으로 줄창 백신 쏘아대고…..그래도, 우리가 유리하져, 택배며, 음식배달, 기념일 꽃배달, 영전이네 좌천으로 비워지는 실내수리, 전화가설, 컴퓨터 업그레이드 등등 외부 인물이 드나드는 손끝에 하나 짱박아 집어 넣는다고 알 게 뭡니까? 요즈음 도청장치는 금속탐지기에도 안 걸려여. 누굴 짱구로 아나? 암살용 권총도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세상인데…..’



‘일슈야, 근데, 어째서 담당 검사인 돈빨이 이렇게 조용허냐? 갸 물먹은 거 아니냐?’



‘그럴 수도 있져. 대대하게 수색작전 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용의자 도주해, 도주한 용의자, 눈 앞에서 발러, 게다가 때 아니게 국정원 아그들 까지 설쳐….아마 죽을 맛 일 거유, 모르긴 몰라두.’



‘돈빨이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근데, 검찰은 그와 다르게 난리 벅구통?...... 그럼 돈빨은 현재 어느 편도 아니다?’



‘그럴리 있겠어여? 다 같이 한 솥밥 처먹는다구 끼리끼리 놀고 자빠졌을 텐데……’



‘아냐, 지금까지 하는 짓거리로 봐서 돈빨은 상록수든, 황성 이든 간에 이 사건의 감을 확실히 잡질 못한 게 분명해. 내 판단이 틀림없다.’



‘형, 그럴게 아니고, 돈빨을 접촉해 보는 건 어떠우?’



‘그건 왜?’



‘만일에 돈빨이 완전 중립에, 객관적 입장이라면, 우리가 나선다고 눈이야 부라리겠수? 얼씨구나는 아니더라도, 귀 기울여 듣지 않을까 싶어서…..’



‘그 말도 일리는 있다. 나중에 여차직하면 꿰어보지 뭐.’



‘자기야, 그 I-POD나 열어보지? 대체 뭐가 들었길래….’



‘참, 사모님, 이제 무슨 일을 허셨는지, 얘기나 쫌 들어보져.’



‘얘기하자면 길져. 제가 하는 일을 말로 단순하게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덩여. 황성 그룹내에서 핵심적인 일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업들이 꽤 있어여. 예를 들자면 분식회계 자료를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교묘하게 회계상으로 분산해서 비벼넣는 작업이랄지….’



‘아니, 그런 것도 있습니까?’



‘왜 없겠어여? 정식으로 돈 끌어다가니, 깨끗하게 비즈니스 하려면 누군들 못하겠어여? 이리저리 대정부 로비를 위해 찔러 넣은 돈들, 회계상으로 빵꾸내지 않으려면, 별 도리 없거덩여. 그 무지막지한 그룹내의 회계처리 분량 속에 그 공간을 전산상으로 메꾸는 건, 대형 메머드 그룹들끼리는 불문율처럼 행해지는 얘기들이져. 그룹의 관련사들끼리 내부자 거래를 통해 비용의 과다지급을 자연스럽게 돌출시킨 와중에, 그 빵꾸난 것들을 비벼 넣기도 하구, 이미 기능이 정지된 해외지사에 청와대의 재가까지 얻어가면서 막대한 금액을 송금하고, 그 송금된 돈을 역으로 국내로 반입시켜서, 해외의 유령회사가 선심좋게 투자하는 돈으로 탈바꿈 시켜설랑은 비자금으로 쏘기도 하니깐여. 알리바이는 빵구나라고 존재한다는 말처럼, 아무리 가리고, 뺑끼를 쳐도, 들추려고 맘 먹으면, 그 까이꺼 금방 뽀록 나요. 그러니, 저희 같은 전산전문가가 나서서, 의심이 가긴 하는데, 워낙 방대하고 쫀쫀하게 깔아 놓은 통에 그걸 쫓는 것이 무의미 하다고 여기게 할 만큼 미세한 차이로 비벼넣는 작업을 주도하게 되는 거져.’



‘그럼 황성 내에서도 그런 작업을 일삼았다는 얘긴가여?’



‘그래여. 누가 탈세 혐의로 잡혀가도, 소금 먹은 놈이 물켠다고, 다 같이 주머니에 찔러넣은 돈들이 모가지 뒤에서 댕그렁 대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있어여? 맨 첨에야, 죽일 것처럼 달겨들어서 죄수복 입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는 뒤로 다 빼거덩여. 집행유예니, 벌금형, 건강상의 이유로 수감생활이 불가능 허네 하면서, 랄랄룰루 하며, 세상 천지로 다시 기어 나오니까여. 그러니, 저희들도 별 걱정없이 그걸 일이라고 굳게 믿고 하는 거에여. 어차피 자기가 안 하더라도 누군가는 승승장구, 윗선의 따사로운 보살핌 속에 그 일을 수행함으로 인해서 커나갈 테니깐여.’



‘근데, 사모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길래?’



‘법적으로 그룹내에는 중립적인 위치의 내부 감사가 있게 마련 이에요. 근데, 이 감사실의 위치가 양날의 검 같은 기능을 갖고 있져. 하나는 사내 업무의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건강한 기능, 또 다른 하나는 얼마나 구라를, 표시 않나게 치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기능…..이를 테면 사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감시기구라 이거져. 제가 하는 일이 그거 였어여. 감사실 소속은 아니었어도…..’



‘당신이 어째서 그런 일을….’



민기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윤서를 쳐다봤다.



‘자기야, 그런 눈으로 볼 필요 없어. 회사 생활하는 사람들, 언제 짤릴지 모른다고, 개판 지기고 사는 거 같애? 아니야, 암선고 받은 환자가 하루라도 더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것처럼, 언제 명퇴니, 계약해지니 하는 철퇴가 날아올지 몰라도, 하루 살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뼈빠지게 일하는 게 요즈음이야. 그러니, 회사라는 커다란 우산 밑에서 하는 짓거리, 누가 뭘 가리고 자시고 할 명분이 없다니깐? 그냥 그게 일이니까 한다. 그러려니 하는 거지. 그 일의 불법적인 면을 스스로 판단한다? 그럴려면 그 자리에 있질 말아야지. 내가 OJT받으면서 첫번째로 들은 업무지침이 뭔지나 알아? 아이디어와 수행능력은 자신을 생존시킬 테지만, 판단의 함선은 기어코 좌초된다는 얘기 였다구.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이렇다 저렇다 비평할 값이면, 회사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래서여?’



‘제가 맡은 일들이 모두 불법적인 건 아니었어여. 개중에는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 미끈하게 유도되는 일들도 많았져. 그런데, 문제는 정권이에여.’



‘정권이라녀?’



‘아무리 정경유착을 근절하자, 어쩌자 해도, 그걸 깨부술 수 있는 그룹사는 전무해여. 안 그렇겠어여? 우리가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무지막지한 나라도 아니고, 천연지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닌데다가,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살자고 부대끼는 판이니, 부정은 이미 저질러 지라고 버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진 거져. 그거 아세요? 정권이 바뀌는 시점에서 그때까지 차일피일 불가사유가 꼬리표처럼 달려, 밀려있던 대 정부 프로젝트들이 우르르 허가가 떨어진다는 사실? 가는 차들이 바닥에 떨구어져 있는 모이를 놔두고 이사갈리 없거덩여. 예를 들자면, 골프장 부지 선정이랑, 정부허가가 그래여. 사정의 칼날 어쩌구 하는 신정권 초기에는 못허네 하면서 퍼질리고 있다가 정부가 레임덕에 빠지면서 상층부로부터의 지침이, 씨알이 멕혀들어가지 않기 시작하면,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다 같이 나서서 도장 팡팡 찍어주고, 완공날짜 간판 떡 하니 붙이거덩여. 그때 서류상의 하자는 그냥 그대로 하자, 즉 밀어붙여 해보자는 얘기라는 말, 들어 보셨져?’



차 안의 사람들은 윤서의 조리있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었으며, 차는 밀리고, 서고를 반복하다가 탄력을 붙여가며, 속력이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윤서씨는 황성에 재직하고있는 직원으로서, 회사의 비리를 감추어야 할 입장에 있던 거 아닌가여?’



희진이 윤서에게 물었다.



‘그렇기야, 하져, 희진씨에게 얘기 했듯이, 그건 연유만 아니라면, 저도 잠자코, 누가 디지든 간에 일이려니 했겠져. 그러다. 옆집의 미스 윤을 만나게 되면서, 일이 공교롭게도 확산되어 버리기 시작했어여.’



‘확산된다는 말은 무슨 의미오? 다른 사람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미오? 우리가 알기로 죽은 그 여자는…..’



삼슈가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그건……’



‘사모님, 이젠 가리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닌 거, 다 아시져? 챙피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이 말입니다. 사람이 살고 죽어가는 이 마당에, 못할 말이 뭐가 있겠숨까?’



일슈의 다그침에 윤서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차의 굉음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아니, 검사님, 이 시간에 왠일로? 정말, 얼굴이 말이 아니시네. 어쩌다가?’



이 형사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하는 걸 이미 알아챈 진검사가 억지로 웃으며, 입을 활짝 벌렸다.



‘웃어, 맘껏 웃어. 참지 말구. 꼭 영구 같쥐? 이빨 빠진 뭐시기 우물가에 가지마라구 했는뎅….자꾸 웃을래? 고만 쫌 웃지?’



‘와, 검사님 국밥 드시다가 웃으시면, 그 사이로 밥풀 장난 아니게 쏟아지겠네여.’



‘됐거덩? 인제 고만 쫌 웃고설랑, 상황보고나 쫌 하지?’



‘아참…네…..보고 들어온 것은 아까 그 선우현석 팀장이 내일 아침 여기로 출두하기로 했다는 거, 메시지 받으셨져?’



‘응.’



진검사는 구지 그를 만나고 왔다는 사실을 알리질 않고 있었다.



‘그 동안 있었던 보고 사항은….그러니까 민윤서와 선우현석씨와 도주중에 전철 구내에서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와 있었구여…에또….길거리에서 봤다는 사람…..참 그리고, 두 사람을 목격 했다는 장소에서 대규모 패쌈이 있었다는 보고도 들어와 있습니다. 뭐 연관은 없어 뵈는데, 칼이네, 연장을 휘두른 모양 입니다. 때가 어느땐데…..’



‘그건 그렇고……민윤서의 모친, 민홍선 여사에 대한 소재파악은?’



‘그게 그러니까, 오리가 영 무중력 상탭니다.’



‘제보 멜이 왔다는 정형사한테도 뭔 소식 없구?’



‘네.’



‘위에서 뭔일로 나를 찾았다나?’



‘뭐 상황보고가 왜 이리 더디냐 그거져, 뭐. 연일 신문 방송에서는 때려 대는데, 진전된 거는 없고, 윗선에서는 쪼고…..다 허던 굿판 아니겠습니까여?’



‘띨띨띨……’



‘네, 이형삽니다. 응, 그래, 자네도 양반되기는 글렀넹…방금 검사님께서 자네 얘기 했는뎅…..응….응…..근데……메시지?.....근데?’



형사들의 버릇은 무슨 일이고 간에 적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진검사의 눈에도 이형사가 전화를 받으며, 무언가 급하게 적어대는 것으로 보아, 무슨 일이 터진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응….응….근데……뭐라구…..그게 정말이야?......응응…잠깐만….검사님 옆에 계시니깐 바로 바꿔 주께…..끊지 말어.’



‘응, 난데….뭔 일로 이렇게 호들갑?’



‘여 큰일 났다 아입니꺼? 검사님, 빨리 와 보이소.’



‘뭔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야?’



‘디졌다 아입니꺼?’



‘밑도 끝도 없이, 누가? 누굴?’



‘용의자, 민윤서캉 발랐던 선우현석 아시지예?’



‘근데 왜?’



‘방금, 제 핸폰으로 메시지가 왔거덩예. 그 부부 둘 다 죽어쓰니까네 집으로 가보라꼬예.’



‘뭐라구? 죽어?’



‘뒤졌다 안 합니꺼? 지가 그리로 가고 있그든예? 우짜까예?’



‘지금 어디야?’



‘지금 거의 다 왔쓰예….문 앞이라예…초인종 눌러 볼까 예?’



‘그래, 들어가 봐. 어찌 된건지…..’



‘마, 이기 무신 일이고…..검사님예, 문이…..어디보자?……잉? 열려있쓰예…..이기…이기….’



‘정형사…정형사….정형사? 왜 말이 없쓰? 여보세여..여보세여?.....’



‘검사님예…말을 몬하겠쓰예….내 생전 이리 숭치칸 모습은 첨이라꼬예…..우짜노….다리가 뜰려서….휴우’



‘끊어. 내가 갈때까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총 뽑고 들어가서 문 잠그고 있어, 알았쥐?’



‘이 형사, 출동하자구. 아무래도 선우 팀장에게 뭔일이 터진 것 같네. 감식반에 연락하고, 보도 통제 하라고 일러 놓고……아무래도 이건 쫌….’



얼마전 얼굴을 보고 온 미주와 현석에게 일이 터졌다는 정형사의 떨리는 목소리를 진검사는 청사를 나서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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