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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마을 - 30부

관리자 0 5021
30부



제법 저녁바람이 쌀쌀해 진 것 같다.

마루끝에 앉은 현우는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스런 밤공기에 몸을 맡기고는 살결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을 음미해본다.

부드럽게 살결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부드러웠다.

솜털을 어루만지며 스쳐가는 시원함에 상쾌해지는 기분이 느껴지며 마음이 평온해지기 시작한다.

이젠 어느정도의 거동엔 불편함이 없었지만 현우는 자신을 염려하는 사람들에 의해 아마도 당분간은 얽매인 생활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꽤 긴시간을 집안에 갇힌 채 칩거 아닌 칩거를 해온 생활이 지겹기도 했지만

그래도 몸을 추스리기엔 적당한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며 은은한 미소를 띄운 현우는 한동안을 우두커니 마당을 지키다 방으로 들어간다.



현우는 잠결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에 정신이 들어가고

띄어지는 눈을 방밖으로 돌리고는 귀를 모으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조용한 밤에 누가 이렇게 구슬피 우는지 의아해지는 마음과 더불어 몸이 일으켜지는 걸 느끼고는 방문을 열며 마루로 나선다.

어느새 나왔는지 영주댁과 혜숙이 마루끝에 서 있는게 보여지고 어두운 마당 한가운데 누군가가 무릎을 굽힌 채 앉아 있는게 보여졌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마당을 바라보던 현우의 눈에 놀람의 빛이 어려지며 자신을 깨운 장본인을 바라 봤다.

재섭네 아낙이다.

마당 한가운데 무릎은 꿇고 고개를 숙이고는 구슬프게 우는 모습이 보였다.

“흑..흐윽…..흐흑흑…….”

굳어진 듯한 영주댁의 얼굴에서 무거운 입이 열려가며

“무슨 일인가….자네가….왜…우리집엘 왔나…??…”

“흑…흑……어르신….어르신…….”

흐느끼는 재섭네의 어깨가 크게 떨려가며 차마 다음말을 잇지 못하는 듯 말문이 막혀가고

“왜……아직도….우리에겐 남아있는….원한이라도 있나….??..”

“흑…아닙니다요….아닙니다요….결단코………그런게 아니라……흐윽…..”

영주댁이 재섭네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차가게 보여진다.

호흡을 가다듬은 재섭네가 바닥으로 몸을 깊숙이 숙여가며 흐느끼는 말을 토해낸다.

“흑….쇤네가…..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쇤네가…언감생심…..눈이 멀어….못할짓을…..흑..흑..”

마루끝에서 재섭네를 바라보던 혜숙이 마루에 나서서 마당을 지켜보는 현우를 발견하고

현우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의 변화를 살피려고 한동안을 바라보았다.

미묘해지는 현우의 얼굴에서 분노한 빛이 흐르다가 측은해 보이는 안타까움이 흐르는걸 느낀 혜숙은 가느다란 한숨을 쉬어간다.

“쇤네를….죽여…주십시오….감언이설에…..넘어가…크나큰..죄를 범한 ….쇤네를…죽여..주십시오…흐흐흑……”

떨리는 마음을 부여 잡은 채 재섭네 아낙은 서글피 울음을 터트리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현우를 바라보던 영주댁은 짧은 탄식을 터트리고는

“어떻게 할 셈인가…??…자네를 죽이고…살리고는…우리가 얘기 할 …건덕지가 못 되네…”

“흐흑…흑…목이라도 매어서….죄를…빌고…싶습니다만….어린것들…때문에…..흑흑흑….”

늦은밤 감나무 집을 찾아온 재섭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모든 것을 잃을수도 있었지만 자신보다도 어린자식들을 생각하는 애틋한 모정은 그녀에게 속죄의 행동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참을 서글프게 울어대던 재섭네는

“흐흑…제발…속죄할 수 있는 길을 아르켜 주시길,,,,….내가 죽어서 흙이 될 때 까지라도..

내죄를 속죄할수 있도록…..흐흑흑….”

조용하던 마을에 파란을 일으킨 죄는 괘씸하기는 했지만

현우는 더 이상 그녀를 어렵게 하고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그녀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그녀와 아이들을 멍들게 했고 어찌보면 그녀도 피해자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한 현우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어갔다.

깊어지는 밤하늘위로 길게 꼬리를 늘어 뜨리며 별이지는게 보여지고 재섭네를 일으켜 세우는 혜숙이 마루로 올라서는게 보여진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위로 장난을 치는 듯 몇 마리의 새가 날개짓하며 대문위로 내려 앉았다.

혜숙은 한동안을 멍하니 새들의 몸짓을 살펴보다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현우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올린다.

“잠이 부족하지 않니..??…더 자지….”

“후후…아니예요…잠은 그 동안 실컷 잣는데요………뭐…..”

현우를 바라보는 혜숙의 눈에 잔잔한 정이 느껴지고

어제밤 재섭네와의 일로 혜숙은 현우의 진실한 모습을 본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푸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받은 상처를 덮은 채 상대방을 용서하는 배려가 혜숙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마을을 떠나기로 생각한 재섭네가 영주댁과 현우에게 용서를 구했고 현우는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그녀를 용서했다.

길지않은 시간이었지만 진실된 것처럼 재섭네가 용서를 구하고 현우가 그 일을 덮고 용서를 한것이었다.

자신의 어린 자녀들을 위해 재섭네는 멀리 떨어진 다른 마을로 이주를 선택하고는 자신의 가지고있던 밭과 작물들을 현우에게 일임을 하고는 어제밤 쓸쓸히 마을을 떠나갔다.

현우는 재배되는 작물과 자룡골에서 배추가 수확되면 밭의 가격을 주는것으로 결정하고 그녀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다시 마을로 돌아오라는 따뜻한 말까지 배려하며 재섭네의 안위까지 걱정해주는 따뜻함을 보여 준 것이었다.

재섭네의 밭이 꽤 큰편이라 현우는 처분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선택을 하라고 했지만 재섭네는 마음을 정하고 있었던지 현우에게 모든걸 일임하고 모든 처분을 알아서 해달라는 청만을 남기고 쓸쓸히 마을을 떠났다.

예전같지 않은 인심에 현우처럼 속없이 재섭네를 보내주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혜숙은 현우가 자신의 조카라는게 기쁘게 생각되기도 한다.

“어제일은….니가 결정을 잘 한 것 같아서 기쁘더구나…..”

“………….”

“용서라는 게 쉬운게 아닌데…..어려운 결정을 해서 …나도 그나마 마음은 편하기도 하고..”

“어쩝니까…..??….나 만큼이나….재섭네 아주머니도 힘들었을 텐데요…..휴 우…”

“그래….니 맘을 알 것 같다…..”

혜숙이 현우의 손등을 덮고는 따스하게 도닥이고는 자세를 일으켜 부엌으로 들어가고

방문이 열리며 눈을 비비며 진우와 영주댁이 마루로 나왔다.

“아….함……”

하품을 하는 진우가 현우의 곁으로 다가오며

“형아….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후후후…내가 너 같은 잠꾸러기 인줄 아니….??”

“헤헤헤…형아도 잠은 많이 자던데..뭘….”

“후후후…….”

오랜만에 평화로워진 모습들을 보면서 영주댁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마루에 앉으며 영주댁이 현우를 바라본다.

“인자…어찌 할려고 하누….??…”

영주댁의 물음에 현우가 고개를 돌리고는 영주댁을 바라보았다.

길지않은 시간동안 많이 상한 듯 영주댁의 얼굴이 피폐해 보여지고

아마도 현우에 대한 일 때문에 그동안의 심려가 컸으라고 생각을 하며

“재섭네 밭 얘기예요…??…”

“그려….작지 않은 밭인디……”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지요…외지에 가서 살려면 아무것도 없이는 힘들거라고 생각이 들어요…그래서 처분을 하던지 아니면 가격을 적정하게 쳐서 가져다 주려고 해요…..”

영주댁은 말없이 고개를 끄떡인다.

혼자서 어린자녀들과 모진 편지풍파를 견뎌내려면 아무래도 어느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겠다고 생각이 들어졌다.

현우는 어제밤 늦게까지 잠 못 이루며 생각하던 앞으로의 계획을 영주댁에게 말을하고 영주댁은 가만히 들으면서 알아서 해보라는 듯 고개만을 끄떡인다.

이제는 영주댁도 현우의 마음을 알았는지 별다른 얘기를 하지않았고 믿음이 깊어진 까닭인지 현우를 바라보는 눈속엔 따뜻한 기운마저 서려있는 것 처럼 보여진다.

마당을 서성이던 현우가 대문밖으로 나서기 시작하고 우물가로 내려서는 영주댁이 진우를 씻겨가며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재섭네가 마을을 떠난지도 벌써 한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마을은 아무일도 없었던 듯 평온하게 보여지고 가을을 맞이하는 마을 아낙들의 손길만이 무르익어가는 들녘을 수놓아 가고 있었다.

자룡골의 밭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현우는 오랜만에 칠석이 할아버지와 마을 노인들을 찾아갔다.

바쁜 관계도 있었지만 한동안의 칩거로 인사를 나눈지가 꽤 오래 되었다는 생각과 중대한 의논거리라도 있는 듯 현우는 마을의 외곽에 보여지는 초라한 집으로 걸음을 옮겨가고 점점 가까워지는 볼품없는 초가집의 안으로 들어간다.

마루에 걸터앉은 채 두런두런 말을 나누는 몇 명의 노인들이 보여졌다.

“아니….이게…누군가…??…..”

곰방대를 빨아대던 노인이 현우를 알아보고는 반가운 듯 말을 건네오고

“어르신들…그동안 별고 없지요….하하하…”

“아이구…김진사 손주가 아니신가…??…허허허….이제는 다 낳았는가.. 보이….”

“어서 오시게….건강하게 보여서 다행이구만….허허허….”

노인들은 한마디씩을 앞다투어 내뱉고는 반가운 듯 현우에게 마루에 앉으라는 손짓을 해 보인다.

현우가 왈패와의 일 때문에 몸져 누었을때도 간간히 자신을 찾아준 고마움도 있었지만

마을의 어른들인 만큼 의논해야 할 얘기들도 있었기에 오랜만의 방문은 현우에게 다시금 미소를 지어 올리게 하였고 마을노인들의 지대한 관심으로 현우도 자기자신이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이 들어졌기에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마루끝에 걸터 앉았다.

칠석이 할아버지가 은근한 미소를 띄우며 자신의 곁에 앉은 현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이며 반가운 기색으로

“허허…이제는 예전처럼 건강해보여서 다행이구나….이 쓸모없는 노인들이 그래도 자네 걱정은 제일 많이 했을걸세….”

“예…압니다….그래서…고마움이라도 표할려고 이렇게 찾아 뵙게 됐습니다..”

“예끼….고마움은…무신…….어려울때 도운것도 없는디….”

“그려….자네가…몸 성헌 것 만으로…되얐네….”

인정이 넘치는 한마디 한마디가 현우에게 따뜻한 고마움도 되었지만 아직은 마을에서 노인들이 정신적으로 왜 필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힘없고 일도 못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하나 세심하게 마을일에 배려와 칭찬을 하고 어떤때는 다툼있는 일에 중재를 하기도하는 다리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마을이 더 편안해지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우도 남자가 몇 안되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생각을 의논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른들이란 느낌에 노인들의 한마디의 위로는 큰 힘이 되곤 했다.

“그래…재섭네의 밭을 경작해준다는 말이 있든데….어떡 할 셈인가….??….”

김노인이 곰방대를 마루 모서리에 털어가며 궁금한 듯 물어오고 다른노인들도 얘기 중간에 어렵사리 얘기를 꺼내가는 김모인을 바라보고는 현우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시선을 모아간다.

마을에서는 재섭네의 밭을 현우가 경작하고 수확하는 것을 바라보며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가 많았고 나쁜뜻은 없겠지만 왜 재섭네 밭을 갈아주는지 궁금해하는 눈들이 많았다.

현우도 자신도 그 얘기 땜에 노인들에게 방문한 목적도 있었고 언젠가는 알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고는

“예….어차피 말씀을 드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재섭네가 마을에 살지를 못하면서

정리할 부분은 정리를 할 생각이니까요…”

“……………”

노인들의 눈은 호기심어린 빛으로 현우의 다음말을 기다리고 가늘게 한숨을 내 뱉은 현우는

“재섭네를 용서했습니다…그리고…당분간은 재섭네가 타지에서 살더라도 어려움이 없도록 밭을 처분하여 주기로 약속도 했구요…그래서….”

“에엥..??…..무슨 엉뚱한 얘긴가…..자네…설마….??…”

“허허….이사람……”

동그래지는 시선들이 현우를 바라보며 재정신이냐는 듯 답답하다는 시선을 보내오고

“이 사람아….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자네를 반 죽음상태로 몰아넣은 원흉인데…그게 말이 되는 얘긴가….??…”

“아이구….내가 답답하구만…내가….”

성질 급한 이노인이 마치 자신의 일 인양 가슴을 치며 분개하는 모습을 보여간다.

“자네는…베알도 없는거여..??…..어찌….그런일을 당하고도……. “

“저도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만….재섭네 혼자만 있는게 아니고 얘들도 있어서…..”

“아이고…..그렇다고 왜 자네가 나서서 그러는감….응..??…이 사람….아이구…내가 답답혀서…원…….”

“허허….이러지들 말고 이사람 얘기 좀 들어보세나……뭔가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구만…”

보다못한 칠석네 할아버지가 노인들을 만류하며 진정을 시켜간다.

답답함에 곰방대에 담배를 채워넣고는 불을 붙여 올린 이노인이 한숨을 내 뱉으며

“그려….얘기 들어봄세….우리는….그런사람들 까정 도와줄 수는 없는거여…그러니…우선은 자네말을 들어 봄세….”

“예………”

현우는 자신에게 찾아왔던 재섭네와 마을을 떠나면서 부탁했던 내용들을 노인들에게 얘기하고 한동안을 현우의 말을 들어가던 노인들도 현우의 뜻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못마땅한 기색들을 애써 감추지는 않는다.

성질급한 이노인도 현우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는지 현우를 측은하게 바라보고는

“참…자네는 속도 좋으이….자네 외조부이신 김진사만 있었더라도 그 아낙은 멍석말이를 당했을거구만…쯔쯔쯔……휴….우…”

현우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노인들이 말은 알겠지만 이미 약속한 일이기에 더 이상의 말은 하지않았고 가만히 바라만 보던 칠석이 할아버지도 가는 숨을 내쉬고는

“할수없지…..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믄야….그렇게 하는수 밖에…대신 밭은 외지인에게 팔아서는 안되네….마을의 평화가 계속 될려면…그렇게는 안되네….”

노인들이 말을하는 칠석이 할아버지를 쳐다보고는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떡이고

“자네가 그 밭을 매입하게나….그리고 자네가 여기에 자네 뿌리를 내리고 마을을 이끌어 나가는게 나은 방법이라 보네…..어떤가..??….”

노인들의 말을 한동안 경청하던 현우도 노인들의 말뜻을 이해했다.

현우의 능력이면 몇해안에 재섭네의 토지를 인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칠석이 할아버지의 말은 현우가 재섭네의 토지를 맡아서 경작하면서 그 대가를 치루도록 얘기를 한다.

“예….무슨말인지 알겠습니다만…..”

“……….??………..”

“아직 못다했던 공부도 남아있어서 ……”

“허허…이 사람……”

노인들의 눈으로 긴장의 빛이 흐른다.

현우의 뒷말은 떠날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기는 탓에 노인들의 마음은 차갑게 얼어붙고

조심스러운 눈빛을 보인 김노인이

“자네…마음을 마을에 두면 안되겠나….??…자네가 있음으로 우리 초록마을이 이렇게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마을에 들어온지 몇 달이란 시간동안 마을사람들의 현우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이제까지 어떤 누구도 현우처럼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도 않았지만 마을에 남자들의 부재로 그 기대는 추측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느껴지고 있어서 노인들의 눈빛은 염원이 서려있을 만큼 절실하게 보여진다.

“당분간은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 보아야 겠습니다…..마음이 서울을 떨쳐버리질 못하고 있어서 잠시만 시간을 두고 ……”

고개를 숙인 현우도 한곳에 마음을 굳히지 못하는게 답답한 듯 작은 한숨을 토해내고

마을 노인들도 걱정어린 눈빛으로 현우를 바라보며 정적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몇마디의 대화가 오고가고 노인들은 수긍하는 듯 조심스런 말투로 현우에게 말을 이어가고

길지않은 시간을 초라한 집에서 보낸 현우가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초저녁 제법 차가워진 듯한 바람이 감나무의 잎사귀를 스치며 가느다란 신음을 터트리고

현우는 마당을 서성이며 조심스러운 듯 생각에 잠겨간다.

자신이 마을에 온지도 꽤 되었지만 마을밖 세상의 일에는 그동안 너무 무심해져 있어서 요즘은 자신의 살았던 서울의 일과 자신의 다녔던 학교의 생각이 가끔씩 현우의 뇌리로 떠 올라짐을 느꼈다.

현우는 전쟁은 끝난것으로 알고있는데 마을안에 갇혀 있는 까닭에 밖의 소식은 아는게 별로 없었다.

자신이 마을 들어설 때 만하더라도 전국 곳곳이 피폐해지고 전화의 잔해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몇 달이 흐른 지금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궁금해지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있었던 서울에 대해서 어떻게 변해 있을까하는 의구심에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릴적 뛰어놀던 도심의 하천과 많은 인파에 둘러쌓인 종로거리등 현우에겐 고향이나 다름없는 서울이라 더욱 그리워 지는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자신을 반겨줄 사람은 몇 안되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살아왔던 터전이 생각나는건 현우에게 자연스런 본능처럼 생각이 든다.

깊은 한숨을 흘리며 어느새 씨알이 굵어진 감을 바라보고는 현우는 생각을 정리한다.

언제까지 갇혀있는 채 그리워만 할게 아니라 한번쯤은 바깥세상을 둘러보는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결심이 굳어가고 등을 돌리며 마루를 올라설 때 부엌을 나서는 혜숙이 현우를 바라보고는 현우의 앞으로 다가온다.

“왜…??…무슨 고민있어….??….”

“아….아뇨….그냥요…….”

“후훗…가을이라도 타는거니…??….왠지 소심해져 보인다…..”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농이라도 거는 듯 혜숙이 말을 걸어보지만 복잡해진 생각때문인지 현우의 얼굴은 변화가 없다.

혜숙은 다른때와 달리 무언가 갈등하는 것 처럼 보여지는 현우를 바라보며 호기심어린 눈빛을 흘려내면서 현우가 무슨생각을 하는지 마음 한구석에 불안한 마음이 생겨나고

“현우야…..얘기 좀 할까….??…”

“예..??….예……”

마루에 앉아가는 혜숙을 따라 현우가 그녀의 옆으로 앉은 채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마당을 바라보고 혜숙은 무슨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는 듯 현우의 얼굴에 시선을 모은 채 생각을 읽어내려 하지만 도대체 알수없는 듯 고개만을 저어댔다.

“저….숙모…..”

현우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혜숙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서울 좀 다녀오면 안될까요…..??…”

“뭐..??….서울….??…”

현우의 얘기에 놀란 듯 혜숙의 얼굴이 굳어지며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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