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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노예 - 3편

야설 0 307

그는 결코 먼저 버리지 않는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그에게 필요한 여자는 익숙하고 편리하면 그뿐이니까. 절실함도, 사랑도, 미련도 그에게도 없다. 그런데 그가
다시 그녀에게 찾아왔다. 
끝난 사이는 결코 다시 관계하지 않는 그가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왜 뭔가 기대하게 하는 걸까? 이 미친 짓을 시작하고 싶어 피가 들끓는 걸까?

“오빠를 괴롭히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이게 게임인지는 몰랐네요... 난 게임 할 줄 모르니까................”


그가 그녀의 뾰족한 턱을 들어 올려 눈을 가늘게 떴다.


“틀렸어... 넌 게임을 잘해... 그것도 아주 사악하게...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의 손이 닿은 턱에 열기가 모여 다시 그녀의 몸이 데워졌다. 
그 훈기가 무서웠다. 아주 친밀한 사랑으로 착각하기 딱 좋은 체온은 그녀를 한 없이 나약하게 만들었다. 다시 그의 노예가
되고 싶어 안 달하게 말이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내리며 얼른 손을 뗐다.
 

“오빠는 날 미치게 해요..................................................”


영아가 그를 노려보며 원망조로 소리쳤다.


“잘됐군... 너도 내 안에 미처 몰랐던 광기를 불러일으키니까... 미치지 않으려고 내가 얼마나 기를 썼는지 알아?..........”
 

그의 목소리는 격앙된 그녀의 음색과는 대조적으로 너무나 낮아 더 거칠게 느껴졌다.


“얼마나... 기를 썼는데요?..............................................”
 

그의 검은 눈동자는 짙은 그늘로 덮였다. 그녀의 뱃속이 조여들었다. 이럴 때 그는 반갑지 않은 말을 했다. 듣기 싫은데 또 듣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대답을 그녀는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정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여자를 찾았지................”


그녀는 폐 속에 공기가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다 알면서도 그의 입으로 들으니 그 강도가 너무 셌다. 끓어오르는 질투심이 독이 되어 심장 깊숙한 곳에 퍼졌다. 그녀는 벌떡 일어났지만
그가 손목을 잡아당겨 무력하게 주저앉아서 그를 노려봤다.
 

“오빠는... 그래 놓고 내가 다른 남자한테 가는 건 못 견딘다고요?... 정말 남성 우월주의에 이기적이고...........”
“아니... 난 그저 남자일 뿐이야... 너한테 손을 대지 않으려고 내 안에 짐승을 죽이는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까...........”

순간 팔팔 끓어오르던 분노가 차가워졌다.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으니까. 공감하니 맥이 빠졌다.


“알겠어요...................................................................”

“알아?.......................................................................”

“네... 나도 해봤으니까.................................................”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언제?......................................................................”

“작년 마지막 날.........................................................”


말을 하다 보니 진후와 1년 됐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 속의 활활 타오르는 분노는 거짓말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손을 떨쳐 버리려고 했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 단단히 옥죄었다. 
그의 거친 숨결 소리가 그녀의 호흡마저 삼킬 기세였다.

“허세가 아니었어.......................................................”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바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사실대로 다 말해 버리면 방어벽이 다 없어질 테고 그렇다고 목적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거짓으로 치장하고는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불편했다. 그와 끝내지도 못할 거면 차라리 솔직해야 했다.

“반쯤은 그래요..........................................................”

“말장난은 집어치워... 이제 게임 종료야... 자... 말해... 어디까지가 진실이야?................”


그가 그녀의 두개골을 부숴 버릴 것처럼 웨이브 진 숱 많은 단발머리에 손을 마구 찔러 넣고 고개를 치켜올렸다. 그의 활활 타오르는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집어삼킬 듯 눈앞에 가득 채워
졌다. 
영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지만 그는 이마를 붙인 채로 시선을 돌리지도 못하게 단단히 가두었다. 맹수한테 쫓기는 초식 동물 같이 영아의 가슴이 아주 크게 들썩였다. 그의 거친
숨결만큼 그녀의 숨결도 가빠졌다.
 

“우린 둘 다 위안이 필요했어요... 진후 씨는 결혼한 전 여친의 유혹으로부터 이겨내야 했고... 나도 비정상적인 관계의 고리를 끊어내야 했으니까..............”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지... 안 그래?.............................”


그가 그녀의 치마 속에 손을 넣어 모멸감이 느껴지도록 애액과 정액이 뒤얽힌 구멍을 훑었다. 그녀가 질 속이 얼마나 그를 환영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 안의 주인이니까. 그가 원하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고 사정할 수 있고 긁어댈 수 있다.


“하아... 그만... 그만해요.............................................”


움찔거리며 그의 손을 집어삼킬 듯이 욱신거리는 여성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늘 그렇듯이 그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뭘 그만하라고... 우린 멈출 수 없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만이지... 너도 이제 처절히 깨달았을 거야............”


그랬다. 부정할 수 없었다. 비참하도록 깨달았다. 그것도 단번에. 그런데 그의 당연하다는 듯 잘난 척하는 태도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가 이 순간 너무 미웠다.


“안 멈추면... 어디까지 갈 생각인 거죠?... 아... 오빠는 보통 3년을 선호하죠... 유진 언니와도 3년이었던가요?... 그전에도... 3년이라고 들었는데... 우리도 3년... 횟수로는 4년이지만
 뭐 1년의 공백기는 빼야 하니까... 그럼 다시 시작하면 오늘부터 3년?..............................”


그녀의 비아냥거림에 그가 질 속에서 손을 뺐다. 그의 눈자위가 꿈틀거렸다.


“1년 전에 유진이를 만났어?.........................................”

그는 단정하듯 물었다. 그는 어조만 봐도 단서를 찾아내는 유능한 변호사니까.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우연히... 결혼식장에서 만났어요... 난... 신부 측... 언니는 신랑 측 우인이었죠... 언니가 날 먼저 알아보고... 차나 한잔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알았어요... 오빠가 얼마나 여자한테
 무심한지.................................................................” 


“틀렸어... 난 무심하지 않아... 잊었나 본데. 난 여자를 버리지도 않아... 항상 버림받은 쪽은 내 쪽이었지............”


“알아요... 이별 선언에도... 항상 우아하게 끝을 내줬다고 하더군요... 무심하지 않았다는 쪽에는 글쎄요... 정말... 여자가 원하는 게 뭔지 몰랐나요?... 침대 매너만 좋다고 그게 다라고
 생각할 정도면 무심한 거 맞아요..................................”

침대 매너라고 말할 때는 속이 뒤틀렸다. 태욱의 전 여친으로 부터 그가 자신을 이용하는지를 알면서도 3년이나 못 헤어졌던 건 속궁합 때문이라고 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유진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전 남친의 여동생한테 하소연한 것 뿐이었다. 영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듣는 게 오장육부를 아주 갈가리 찢기는 듯이 영혼이 뒤틀려서 1분 1초가
고문 같았다.

“연애를 했다면 그랬겠지............................................”

“뭐라고요?..............................................................”


“서유진은 물론이고... 그전에도 처음부터 분명히 말했어... 연애 아니라고, 그건 기대하지 말자고... 서로 가려운 곳 긁어 주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만나자고... 다 동의하고 만났던 거고.
 자...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말해 줄래?.........................”

가려운 곳 긁어 주는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그녀를 찔렀다. 그녀 또한 다를 바 없을 것 같으니까.
아니 난 달라. 지금부터 그걸 따지는 거야.

“난 동의하지 않았어요... 나한테는 분명히 말하지 않았잖아요... 연애 아니라고... 기대하지 말자고... 서로 가려운 곳 긁어 주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만나자는 말... 전혀 못 들었어요...
 내 기억력에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녀는 저도 모르게 울먹이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눈가를 북북 문지르며 흐려진 시야를 닦았다.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의 목젖이 크게 출렁거렸다.

“아니.....................................................................”

“그럼... 난 오빠한테 뭔데요?.....................................”


진작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무슨 대답이 나올지 두려워서 한 번도 묻지 못했다.


“넌... 내가 원하는 여자야.........................................”


충분치 않았다. 애매하게 말하지 말자면서 정작 답답하게 구는 건 그였다.


“지금은 그렇겠죠... 하지만 오빠가 원했던 여자는 내가 유일했던 건 아니잖아요... 나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있었겠죠..............”


지난 1년 동안 정말 괴로웠던 게 그가 다른 여자와 뒤얽히는 상념이었다. 마 태욱의 빼어난 용모와 섹시한 뇌, 그리고 부와 지위. 모든 것을 갖춘 그를 원하는 여자는 많았고, 그가 손만
뻗으면 바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섹스 파트너였다. 
그는 절대 하룻밤 관계를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섹스 파트너라고 해도 자신과 배경이 비슷한 여자를 원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의
연인 중 가장 뒤처지는 배경이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강점은 순종적이고 원하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는 관계였다. 아무 구속없이 편하게 그를 떠받들어 주는 충직한 노예 말이다.
 

“없었어...............................................................”

“뭐라고요?..........................................................”

“너 이후에는 없었어... 지난 1년 동안 다른 여자는 없었다고..................”


그녀는 믿을 수 없어 고개를 저었다. 그가 그녀의 머리를 단단히 잡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널 안은 후부터 다른 여자를 안을 수 없었어... 다르다는 걸 아니까... 알아 버렸으니까...............”


그의 어두운 눈길이 그녀를 사로 잡았다. 태욱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진실했다. 그 진실이 아주 잔인하고 냉혹하다고 해도 거짓으로
현혹시키지 않았다. 그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뭐가... 다른데요?...............................................”
 

그녀가 고집스럽게 물었다. 그에게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알잖아... 너도 이제 알았을 테니까... 안 그래?.........”


자신만만한 어조와는 달리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를 오랫동안 봐왔기에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싫은 것이다. 그녀와 다른 남자와 얽혔다는 사실이 몸서리치도록 신경 쓰이는
것이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물론 그랬다고 공평한 건 아니었다. 그녀의 고통은 그의 싸늘한 분노보다 훨씬 깊고 큰 아픔이었으니까.
 

“글쎄요... 내가 알았던 남자는 오빠 말고는 단 한 사람뿐이니까................”
 

그가 영아의 어깨를 꽉 누르자 그 통증에 악, 소리가 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참았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어?... 설마 네가 임신한다면 유전자 검사가 필요한 시기까지................”

“그날 밤뿐이었어요... 위안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굳이 다시 시도할 필요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안도하지 않았다. 여전히 인상은 쓴 채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럼... 결혼 이야기는 또 뭐고 오늘은 왜 같이 있었어?... 방금 나간 녀석 맞지?.................”
“오빠가 찾아오면 혼자 상대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 사람은 날 많이 걱정하거든요... 나도 그 사람이 걱정되고요... 그래서 결혼한다는 소문이라도 내서 방어벽을 치고 싶었어요........”

그의 섹시한 입술까지 뒤틀리는 걸 보니 그 역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말이다.


“안 되는 거 알지?................................................”

“뭐가요?............................................................”

“넌 날 원해... 그런데 위안을 얻었던 남자를 곁에 두겠다고?... 내가 그 꼴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험악한 기세에 그녀는 사악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가 질투한다고 생각하니 흥분까지 되는 거였다. 물론 단순히 육체적인 소유욕이겠지만 이 정도라도 감정을 보이는 건 아주 좋은
징조였다.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짐 싸... 올라가자...............................................”

“뭐라고요?........................................................”


태욱이 갑자기 일어나서 옷장 문을 열자 그녀도 침대에서 내려서서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방학이니 나와 같이 지내... 바쁜 일 처리하고 난 후... 다음 주쯤 내가 휴가를 내면 사이판 별장으로 떠나자...............”

태욱은 지금 채찍과 당근을 같이 휘두르며 영아를 제압했다. 사이판 별장을 영아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아니까. 
그곳에는 추억이 많았다. 가족들의 눈을 속이고 밀회를 즐기기에
그만큼 적당한 곳이 없으니까. 
게다가 거기서 그녀는 첫 경험을 했다. 21 살 생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그는 여친과 헤어진 후 싱글이었고 또 다른 편리한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녀는 파트너를 넘어선 그야말로 노예였다. 그가 원하면 뭐든 해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순진했던 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가 섹스를 하기 위해 여행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기껏 그녀가 원한 건 은근한 스킨십이었으니까. 그녀는 그만 보면 막 설레고
그의 여자를 질투했지만 선을 넘을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그건 패륜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노련한 유혹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욕정이 뭔지 여성이 뭔지 무지했던
그녀에게 그가 주는 쾌락은 마약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물론 막상 그를 받아들였을 때는 죽도록 겁이 났지만 그 이후부터 두려움도 잊을 만큼 달콤한 사탕을 받았다.

사랑과 욕정이 만나면 얼마나 폭발적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반쪽짜리 사랑이라도 해도 그녀는 그를 열렬히 사랑했고, 사랑의 행위가 그 사랑을 완성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욕정으로 그녀는 아주 고통스러웠고 점점 피폐해졌다. 그 노릇을 또 하자고? 겨우 끊어냈는데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래. 그런데 달리 방도가 있을까? 끊어냈다고
생각했을 때도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는데. 늘 그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몸은 또 어떻고. 밤마다 그를 애태우며 몸부림쳐 놓고는.
 

“오빠 휴가받으면 그때 사이판은 같이 가요... 하지만... 오빠 집에서 같이 지내는 건 싫어요.................”


그가 독립해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부모님에게 들킬까 봐 늘 조마조마했다. 
특히 부친을 생각하면 그녀는 죄책감에 심장이 아렸다. 그녀 때문에 자신이 태어나는
바람에 부친은 목숨보다 사랑했던 아내를 잃었다. 
그 후 얼마나 외롭고 황폐한 삶을 살았는지 그녀는 잘 알았다. 그랬던 부친이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그녀 때문에 결혼 생활이 흔들 릴
수도 있었다. 
이미 죄를 많이 지었지만 지금도 짓고 있지만 그래도 모르는 게 약이라면 몰라야 했다. 최악의 비밀일 수 있지만 꼭 지켜야 할 비밀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딸이 의붓 아들의
사랑을 받아도 기가 찰 노릇인데 잠자리 상대일 뿐인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널... 여기 두고 갈 수 없어....................................”

그의 짜증스러운 말투에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과할 정도로 신경질적이었다. 언제나 냉정을 잃지 않고는 속을 잘 보이지 않던 그가 지난 1년간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뭔가 초조해
보인달까. 
좋은 징조일까? 그녀는 마음이 약해만 졌다. 하지만 버틸 때까지 버티고 싶었다. 이제는 그에게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편해서 충직해서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면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날 강제적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어요... 난 이제 더 이상 오빠 말이라면... 사족을 못 쓸 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아요...............”
 


더 이상 오빠의 충직한 노예가 되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두고는 정을 떼고 싶었다. 그렇게 들키지 않고 끝을 내면 더 이상 좋을 게 없을 테니까.
그녀가 서른이 되면 그에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도 나이가 들면 콩깍지가 벗겨질 수도 있으니까. 행여나! 그건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회의적이었다. 어쨌든 3년을 그와
지내는 동안 시간에 비례해서 애정의 깊이가 되었다. 
그러니 싫증이 날 거라는 바람은 애초에 글러 처 먹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랬다. 물론 그는 아닐 것이다. 솔직히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왔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태욱이 지난 1년간 다른 여자를 찾지 않았다는 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알아... 이제 절대적인 쪽은 네가 아니라 나지............”


그의 씁쓸한 어조가 그녀의 심금을 울렸다.


“오빠가 절대적이라는 의미를 알아요?......................”
 

영아는 그의 마음을 구석구석 파헤쳐서 오롯이 이해하고 싶었다. 아주 정확히 그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렇다고 미래를 약속받을 수는 없다. 현실이 그랬다.
현실을 망각할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으니까. 미친 건 맞지만 말이다.
 

“알아... 아닌 줄 알면서도 잘못된 길을 계속 가고 있는 내 자신을 막을 수 없으니까... 도저히... 그러니까... 널 질질 끌고라도 여기서 데리고 가고 싶은 거지... 내가 여기서 떠나면 다른
 남자가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으니까...........................”

그녀는 입이 딱 벌어졌다. 
그가 이렇게 막 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는 지금 아주 흥분했고 비록 육욕 때문에 질투와 소유욕을 느낀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녀는 그 사실에 설렜고 기대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처럼 격정적인 그의 모습은 생소했지만 마음에 들었다. 그녀만 그에게 안달했던 과거를 보상받는 기분이랄까.
물론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 그렇다면 올라갈게요........................................”
 

이렇게 약해지면 안 되는데 오래된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그가 실낱같은 희망을 줘도 동요하게 된다. 내 곁에 두겠다는 결심이 선 순간부터.
 

“어때?... 맛있어?.................................................”


태욱은 그녀의 평가에 사활이라도 걸린 것처럼 물었다.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그녀를 위해서 손수 파스타를 만들었다. 그는 요리에 관심이 없었지만 파스타만큼은 자신 있었다. 영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파스타라 유명 셰프인 고객한테 특별히 배웠다. 
그는 그녀를 처음 본 10년 전부터 보살피고 싶었고 몹시도 아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뿐 언행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특히 그녀와 남녀로 엮이고 난 후부터 깊은 죄책감 때문에 더 심해졌다. 그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녀에게 더 거칠게 대했다.

조금만 삐끗하면 무너져 내릴까 아주 몹시 두려웠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녀를 다른 남자한테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건 지금까지 그가 그녀로 인해서 겪었던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아픔일지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는가. 
그녀는 그를 위해 태어난 여자였다. 다른 남자한테 그녀를 주는 걸 뻔히 지켜보는 건 그가 견뎌낼 수 있는 한계점을 넘은 아주 격심한
고통이었다.
 

“맛있어요... 요리 솜씨가 전보다 더 좋아졌는걸요......”


그녀가 입술에 묻은 소스를 혀로 훔치자 그는 군침을 삼켰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서 입을 맞췄다. 그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동그랗게 눈을 굴린 채 미소 지었다.

“그럼... 많이 먹어................................................”


1년 동안 수없이 그녀의 이런 모습을 상상하며 파스타를 만들었다. 연습과 정성이 셰프한테서 배운 단계를 넘어선 그만의 요리법을 익힌 것이다.
 

“오빠도 먹어요....................................................”


그녀가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서 그에게 내밀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영아에게 느껴 보는 다정함이었다. 순간 뭔가 울컥하면서 코 끝이 찡해 왔다. 왜 그녀의 결별 선언에 동의했던
것일까. 
1년 동안 그는 이런 그녀가 그리워 상사병에 걸린 환자처럼 밤잠을 설치고 일에 몰두하려고 애썼다. 그동안 그녀는 다른 남자 한테 위안을 찾았다. 그녀가 그럴 줄 몰랐다.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큰 실수였다. 
그는 오만했다.

그녀가 설령 그와 끝났다고 해도 그렇게 빨리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줄을 몰랐다. 
게다가 결혼 선언은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충격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모친으로 부터
그 소식을 듣고 망치로 둔부를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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