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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형사 - 상편

야설 0 346

은수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크게 하품을 했다. 벌써 4시 15분이 지나고 있었다. 오늘도 허탕을 친 셈이다. 속절없이 또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이제 철수해야 할 시간이다. 너무 늦어서
오늘은 하루 쉬어야겠다는 아쉬움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을 꾹 참으며 옆자리의 강형사를 흔들어 깨웠다.

"이봐 강형사!... 그만 철수하자고..................................................................."

강형사는 언제부턴가 숫제 코를 골면서 잠에 떨어져 있었다. 이제 강력반 생활 2년째인 신참이었다. 그런데도 매사에 아주 열심인 친구인데 한달 동안 계속되는 잠복에 그도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이었다. 생긴 것도 멀쩡하고 허우대도 좋아 평소에도 강력반 형사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친구였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형사로서가 아닌 제2의 인생을 사는 은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픈 욕심이 드는 친구이기도 했다.

나이는 은수 보다 2살 위 이나 일선경찰의 순경을 하다 온 친구였기에 계급은 아래인 경장이었다. 하긴 강력반 형사로 어울리지 않긴 은수 자신이 더 했다. 무엇보다 은수는 여성이었다.
더욱이 169센치의 훤칠한 키에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간 완벽한 몸매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들 처럼 사이즈를 정확히 재보지 않아서 그렇지 몸매나 생김새나 전혀
손색이 없는 팔등신 미인이었다. 4~5년전 만해도 어쩌다 미용실에라도 들르면 미스코리아 출전해보라며 권하던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은수는 다시 한번 강형사를 흔들었다.

"이봐... 강형사............................................................................................."

부스스 눈을 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눈을 붙인 것이 미안한지 겸연쩍은 듯 말을 건넸다.

"이형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깊이 잠들었던 모양이죠.........................................."

은수는 대답없이 창밖을 쳐다보며 시동을 걸었다. 반장의 툭 튀어나온 입이 거품을 무며 온갖 잔소리를 할 것을 생각하니 쓴웃음이 절로 났다. 반장은 강력반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산전수전을 더 겪으면서 말단 순경에서 반장까지 오른 강력반의 살아있는 증인인 셈이다. 요즘도 입만 벌렸다 하면 예전에 나는 말야 하면서 자기 공치사하기에 바쁜 전형적인
소시민으로 더욱이 그는 대한민국 대개의 남성이 그러하듯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여자가 무슨 경찰을......................................................................................."

이라는 생각 때문에 은수가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강력반 형사가 되고자 했을 때 쌍심지를 켜고서 반대했던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은수에게 사건도 맡기지 않고 사무실만 지키게 하면서
혼잣 소리로 인사명령을 낸 윗선을 욕 만하던 반장은 은수가 미제에 빠졌던 몇건의 사건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자 그때부터 아주 조금씩 신임해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도무지
오리무중이었다. 부산에서 러시아 여성이 변사체로 떠오른 것은 벌써 6개월이나 전이었다.

아주 뚜렷한 단서도 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즈음 수사 본부를 해체하면서 미제사건으로 은수에게 떨어진 것은 달포 쯤 전이었다. 차기 인사이동에서 반장으로
승진하게 끔 되어있던 은수에게 해결하면 다행 영구미제로 남아도 어쩔 수 없다는 심산으로 윗선에서 맡긴 것이었다. 은수는 내심 강력반 형사로는 마지막 업무나 마찬가지기에 멋지게
해결하고 장래를 위해서도 윗선의 환심을 사 둘 필요가 있었기에 사력을 다해왔지만 러시아 여인과 같이 다니던 사람의 생김새를 파악한 정도에서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더구나 외부의 수사협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수사는 더욱 지지부진했다. 사실 한달 째 잠복하는 중이었지만 목격자의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봤다는 말만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저... 이형사님... 저는 여기서 좀 내려주시죠......................................................."

갑자기 강형사가 말을 건넸다. 고개를 돌리니 머리를 멋쩍은 듯이 긁으며 사우나나 좀하려고 하며 말을 흐렸다.

"그러지 뭐... 강형사 오늘은 그냥 푹 쉬고 내일 보자고... 대신 내일은 아침 일찍 모여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재구성해보자구........................."

은수는 길가로 차를 세웠다.

"네... 이형사님... 이형사님도 편히 쉬세요............................................................"

강형사는 내리며 목례를 해 보이고는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건넜다. 뒷 모습을 보면서 은수가 언제 한번 이라면서 중얼 거릴 때였다. 갑자기 은수는 온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핸드폰이
온 것이다. 대외용 핸드폰은 오늘 잠복근무 때문에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을 깨달은 은수는 가게에서 온 것임을 알았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던 은수는 오늘은 어차피 하루종일 쉰다는
생각에 폰을 받았다.

"혜미야... 나야 너 오늘도 안 나올거니?... 사장님이 지금 노발대발이야......................"

은미의 전화였다.

"으응... 시간도 늦었고 해서 그냥 쉴려고 하는데....................................................."

그때 전화기 저쪽 너머 사장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어이... 고양이가?... 고양이면 내 바꿔도... 내 할말 있대이......................................"

그러더니 이윽고 또렷이 사장의 걸쭉한 사투리가 수화기를 타고 왔다.

"야... 고양아... 니 이에 자꾸 빼 먹으면 어짜노?....................................................."
"사장님... 미리 약속하지 않았던가요?... 오빠하고도..............................................."
"그래... 하지만... 이번에는 박사장님이 직접 연락했다 아이가... 너 대기시켜 놓으라고... 지금 어디고?... 빨리 온나 마... 5시까지... 귀중한 손님이 온다아이가..........................."
"오빠가요?... 알았어요 곧 가죠..........................................................................."

은수는 시계를 보았다. 4시 30분이 조금 지나고 있었다. 서두르면 가게에 가서 머리를 대충 빗을 시간은 있었다. 오늘은 또 혜미로 살게 되는군 은수는 미소를 머금고 차를 출발시켰다.

"이런 늦은 시간에... 영업 끝날 때가 지났는데... 좀 별난 손님이군............................."

나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룸으로 들어갔다. 정면에 40대 초반쯤의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옆으로 오빠 박창호와 그의 심복 두명이 자리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못 보던 사내 둘이 더
있었다. 모두들 옆에 아가씨를 하나씩 끼고 있었는데 40대의 사내만 홀로 있었다. 아마도 은수가 오늘의 파트너인가 보다.

"오빠가 직접 나오고... 나를 부른 걸 보면 꽤나 중요한 손님인 모양이네......................"

머릿속으로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며 은수는 고개 숙여 다소곳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고혜미예요................................................................................"

뒷 말을 덧붙이려다가 오빠가 손짓을 하는 바람에 움찔하며 멈추고 사내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사내는 거의 표정이 없었다. 힐끗 오빠를 보니 역시 무표정했다. 사실 박사장이라 불리는
박창호는 은수의 친 오빠는 아니었다. 어떤 점에서는 은수가 이렇게 이중생활을 하게 만든 아주 철천지 원수였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진지 이미 오래고 요즘 은수는 그의
숨겨놓은 심복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사실 은수가 강력반을 지원하게 된 것도 그의 사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창문파의 보스 박창호. 하지만 그가 이렇게 아주 거대한 조직의 보스로 성장하기 전까지 그는 부녀자를 납치 인신매매를 일삼고 사창가를 배회하던 동네
깡패에 불과했다. 그러던 그가 은수의 도움으로 이젠 어엿한 한국 제일의 조직 창문파의 보스가 되어 국제적인 조직으로 성장하기 위한 회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은수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이었다.

말단 경찰로 계시다가 순직한 아버지가 그리워 엄마의 굳은 반대를 무릅쓰고 경찰대학에 원서를 내어 합격한 은수로서는 졸업식이 아주 마냥 행복하고 즐거웠다. 홀로 계실 엄마가 다소
염려스러웠지만 그것은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경찰이 되어 엄마에게 아주 오래도록 효도하면서 갚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때부터 은수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남들과 달리 기숙사에서 대학4년을 보내야 했던 은수는 그동안 정들었던 친구 은미와 떨어지는 것이 몹시 서운했다.

그래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서 은미와 단둘이 설악산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은미도 의대에 합격한 상태여서 입학 때까지는 시간이 있었고 둘은 졸업식에 맞추어서 설악산으로
떠났다. 출발은 아주 순조로웠다. 처음 타보는 기차여행도 마냥 좋았고 산 아래부터 녹기 시작하는 설악산의 설경도 감탄을 절로 자아냈다. 비록 대청봉까진 오르지 못했지만 수학여행때
보았던 흔들바위도 다시 밀어보고 울산 바위도 보며 은수와 은미는 마냥 행복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랄까? 내려오는 길에 은수는 발을 삐고 말았다. 처음에는 약간 겹질렀다고 여겼는데 절룩거리면서 아주 무리하게 내려온 때문이지 산을 다 내려와서는 거의 걷지도 못할
지경으로 퉁퉁 부어 버렸다. 은수와 은미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택시는 오지 않고 산을 내려올 땐 몰랐는데 가만히 서서 기다리자니 흐르던 땀이 식으면서 매서운 겨울
바람에 온 몸이 꽁꽁 어는 것처럼 한기가 밀려왔다.

그때 자가용 한 대가 스르르 다가오더니 버스서는 데까지 데려다준다며 타라고 했다. 발을 삐지 않고 그렇게 춥지만 않았어도 둘은 모르는 사람의 차를 그렇게 쉽게 타진 앉았을 것이다.
둘은 기사의 호의에 고마워하며 거리낌 없이 차에 올랐다. 한 5분 쯤 달렸을까? 한적한 산길로 접어들자 갑자기 사내가 말을 건넸다.

"날도 추운데 좀 태워주죠!........................................................................................"

그리곤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길가에 서있던 두 사내 앞에 차를 세웠다. 한 사내는 운전수의 옆자리에 또 다른 한 사내는 은수와 은미의 옆에 비집고 탄 후 차는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차가 출발하자 사내들은 돌변했다. 셋은 원래 일당이었던 것이다. 뒷자리의 사내가 은미의 옆구리에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들이대며 협박했다.

"잠자코 조용히 있어...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엄마야... 꺅........................................................................................................."

은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은수에게로 몸을 기댔다. 그 바람에 은수의 삔 다리를 건드리게 됐다.

"아야..................................................................................................................."

은수는 고통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은수의 비명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고 입안에서 맴돌았다. 사내의 커다란 손이 무지막지하게 등허리를 내려쳤기 때문이다.

"윽......................................................................................................................"

은수는 비명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은미도 떨며 은수를 안아왔다.

"조용히 있어... 살고 싶으면...................................................................................."

앞자리의 사내가 뒤를 돌아보며 나직이 윽박질렀다. 그러자 뒷 자리의 사내가 말을 건넸다.

"형님... 건데 요것들은 그냥 넘기기 쪼까 아깝네요?...................................................."
"마... 니가 언제 그냥 넘긴 적 있냐?... 느덜느덜 걸레를 만들어서 넘겨놓곤....................."
"하이 참... 형님도 요것들 상판때기를 보시라니까?....................................................."

사내는 말을 뱉기가 무섭게 은수와 은미의 머리채를 잡고 뒤로 확 제쳤다. 그러자 앞자리의 사내가 음흉한 눈길로 둘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으... 보기엔 쓸만한 데 어디보자............................................................................"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은미의 가슴을 쓱 움켜잡았다. 은미는 두려움에 떨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비틀면서 눈물만 주룩 흘렸다. 그러는 사이 차는 산을 내려와 아주 한적한 마을로
들어서더니 한참을 달려 외딴 곳의 낯선 집앞에 멈추었다.

"다리를 삐지만 않았어도... 어떻게 죽기 살기로 도망이나 쳐보는건데............................"

은수는 다리를 삔 것에 한없이 절망하며 하염없이 쏟는 눈물을 삼키며 울먹이고 있었다.

"은미야... 미... 안... 해... 흑... 흑..........................................................................."

은수와 은미는 나란히 있었다. 옷은 발가벗겨진 채 두 손으론 가슴을 가리고 다리는 비스듬히 꼰 채로 볼은 두 사람 모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몸을 돌리다가 얻어 맞은 자국이었다.

"아저씨... 제발 살려주세요..................................................................................."

둘은 흐느끼면서 입으로는 연신 애원하고 있었다. 2명의 사내들은 두 사람 앞의 소파에 앉아서 낄낄거리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벌거벗은 몸을 향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플래쉬가 터질 때마다 둘은 몸을 돌리다가도 앞의 사내들이 가만있어 라면서 고함을 치면 겁에 질려서 움찔하며 잠시동안 꼼짝 않고 있곤 했다. 이윽고 웬 만큼의 사진 찍기가 끝났는지
카메라를 치우자 대장인 듯 사내가 말을 건넸다. 처음에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아가들아... 이름은?..........................................................................................."

이미 옷을 벗는 과정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참이라 둘은 울먹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답했다.

"이... 은... 수... 김... 은... 미................................................................................."

"겨울에 설악산엔 왜 왔니?...................................................................................."
"아따 형님... 그야 우리들 만날려구 왔지 않능교........................................................"

사진을 찍던 녀석이 느스레를 떨었다.

"야그들아... 어서 대답을 해야지!!..........................................................................."

사내의 재촉을 받자 은수가 아픈 다리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대학가기 전에 여행 삼아서..................................................................................."
"그렇지... 여행은 대학가서도 충분히 할텐데 벌써 못 견디고 온 걸 보면 우리가 보고 싶었던 게지?.................................."

겁에 질린 은미가 왈칵 울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그게 아니고요... 아저씨 얘가 이번에 경찰대학 합격했거든요... 그래서 자주 못 볼 거 같아서 헤어지기 전에..... 흑흑........."
"경찰대학... 흐... 기집애가 경찰대학......................................................................."

보스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 고3이란 말이지?......................................................................................"
"네... 아저씨 저희들은 학생이에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저희 집이 병원하거든요... 연락하시면 돈은............................."
"허... 그래?... 그래 돈은 나중에 받고 내... 한가진 약속하지... 말만 잘 들으면 며칠있다가 돌려 보내주마........................."
"아따... 형님도 그걸 말이랑꼬... 있는 놈이 더 하다고... 잘 아시면서 기래요... 아 돈을 줄 것 같아요... 경찰나부랭이나 달고 오지............"

운전을 하던 사내가 끼어 들었다.

"그 애긴 나중에 하고... 일단은... 저것들 저대로 둘거야?..........................................."
"아... 참... 형님도 그대로 두다뇨?........................................................................."
"그래... 난 저 다리 삔 년이다... 너거 둘은 그 옆에 년... 어린 얘들이니까... 적당히 봐주면서 하라구... 그리고 그것 잊지 말구.................."

보스가 말하자 2명의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은미를 번쩍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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